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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TV 방송 시작 1980년, 6년 먼저 만들고도 흑백으로 본 이유

글연못 2026. 10. 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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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1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KBS 화면에 처음으로 색이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컬러TV 방송 시작을 알린 첫 프로그램은 드라마도 쇼도 아니었습니다. '수출의 날' 기념식 중계였죠.

묘한 장면입니다. 그날까지 한국은 컬러TV를 6년 넘게 만들어 왔습니다. 다만 전부 배에 실어 외국으로 보냈습니다. 공장에서는 컬러TV가 줄지어 나오는데, 그 공장 직원은 퇴근해서 흑백 화면을 봤습니다. 수출만 하던 물건의 첫 화면이 수출의 날 기념식이었다는 것, 우연치고는 꽤 상징적입니다.

만들 줄 알면서 왜 6년이나 보지 못했을까요. 답은 기술이 아니라 '보여 줘도 되는가'라는 판단에 있었습니다.

1974년부터 만들었지만 국내에서는 살 수 없었습니다

컬러TV가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해는 1974년입니다. 아남산업이 일본 기업과 합작해 세운 한국나쇼날이 시작했고, 1977년에는 금성사(지금의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대규모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전자신문은 이 무렵의 컬러TV가 수출용이었고 국내 시판은 금지돼 있었다고 정리합니다.

방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6년 5월 12일 첫 전파를 쏜 뒤로 한국의 텔레비전은 줄곧 흑백이었습니다.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컬러 수상기를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였으니까요.

정리하면 이런 시간표입니다.

시기 일어난 일
1956년 5월 12일 국내 첫 텔레비전 방송(흑백)
1974년 컬러TV 국내 생산 시작(한국나쇼날)
1977년 금성사·삼성전자 컬러TV 생산 참여
1980년 8월 1일 컬러TV 국내 시판 허용 발표
1980년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컬러 방송 결정
1980년 12월 1일 KBS 컬러 시험방송 시작

컬러TV 방송을 미룬 이유는 '위화감'과 '과소비'

당시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계층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전자신문 기사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이유로 컬러 방송에 반대했다고 전합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낯선 논리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 컬러TV는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옆집은 컬러로 보는데 우리 집은 흑백으로 본다는 사실이 눈에 보이는 격차가 된다고 본 것이죠. 한 푼이라도 아껴 수출과 저축으로 돌려야 한다는 분위기도 강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색이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살림과 사회 분위기의 문제로 다뤄진 셈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못 해서'가 아니라 '안 하기로 해서' 흑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은 준비돼 있었고, 막고 있던 것은 결정이었습니다.

문을 연 것은 불황이었습니다

6년 동안 닫혀 있던 문은 뜻밖의 이유로 열렸습니다. 1980년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그해 전자산업 생산은 13.1% 줄었고 가전제품의 국내 판매량은 36.6%나 줄었습니다. 문을 닫는 전자 업체가 이어졌습니다. 컬러TV 공장의 가동률은 24.6%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네 대를 만들 수 있는 설비로 한 대만 만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팔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시장이 바로 국내였죠. 1980년 8월 1일, 상공부 장관이 컬러TV의 국내 시판을 허용한다고 발표합니다. 석 달 뒤인 11월 10일에는 국무회의가 컬러 방송을 결정했고, 12월 1일 KBS가 시험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위화감'이라는 이유는 그대로였는데 결정이 바뀌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형편이었습니다. 사치품이라며 막았던 물건이 공장을 살릴 내수 상품으로 다시 읽힌 것입니다.

색이 들어온 뒤 벌어진 일

막혀 있던 수요는 빠르게 터져 나왔습니다. 전자신문은 1981년 7월까지 컬러TV가 100만 대 넘게 보급됐다고 전합니다. 시판 허용 뒤 1년이 채 안 된 때입니다.

산업 쪽 숫자도 움직였습니다. 1981년 전자산업 생산 규모는 37억 9,100만 달러로 한 해 전보다 33% 늘었고, 수출도 22억 1,800만 달러로 11% 늘었습니다. 내수가 열리면서 가동률 전망치도 82.3%로 올라갔습니다.

덜 알려진 효과도 있습니다. 컬러TV는 흑백TV보다 부품이 세 배쯤 많이 들어갑니다. 국내에서 컬러TV가 팔리기 시작하자 부품과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들에게도 안방 시장이 생겼습니다. 전자신문은 이것이 반도체 산업의 내수 기반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됐다고 짚습니다. 거실의 화면 색이 바뀐 일이 훗날 한국이 잘하게 될 산업의 밑바닥과 이어져 있었던 셈이죠.

금성사와 삼성전자는 곧바로 새 모델 경쟁에 들어갔습니다. 금성사는 1982년까지 80여 종, 삼성전자는 1983년까지 약 70종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6년 동안 수출용으로만 쌓아 둔 기술이 한꺼번에 국내 매장으로 쏟아진 것입니다.

만들 수 있는 것과 쓰게 하는 것 사이

이 이야기에서 오래 남는 것은 6년이라는 시차입니다. 기술이 준비된 날과 사람들이 그 기술을 쓰게 된 날 사이에 6년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채운 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이걸 허락해도 되는가'라는 판단이었고, 그 판단을 바꾼 것은 설득이 아니라 불황이었습니다.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됩니다. 이미 만들 수 있는데 쓰지 못하게 묶여 있는 것들이 있고, 그 이유는 대개 그럴듯합니다. 그리고 문은 논쟁에서 이겨서 열리기보다, 닫아 두는 비용이 너무 커졌을 때 열리곤 합니다.

1980년 12월 1일 아침의 수출의 날 기념식 화면은 그래서 두 가지로 읽힙니다. 흑백 시대의 끝이면서, 6년 동안 밖으로만 내보내던 것을 처음으로 안에서 켠 날입니다. 어떤 기술이 왜 아직 우리 생활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궁금할 때는 "못 만드는가"보다 "누가, 무슨 이유로 막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 답에 빨리 닿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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