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게임·스네이크 게임, 잘할수록 내 꼬리가 길을 막는 규칙의 교훈

지렁이 게임을 해 본 분이라면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화면에는 적이 한 마리도 없습니다. 총알도, 함정도, 시간제한도 없습니다. 그런데 게임은 끝납니다. 길어질 대로 길어진 내 몸통에 내 머리가 부딪혀서요.
스네이크 게임이라고도 부르는 이 게임의 규칙은 두 줄이면 끝납니다. 먹이를 먹으면 몸이 한 칸 길어진다. 벽이나 내 몸에 닿으면 끝난다. 이 두 줄이 합쳐지면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잘할수록 어려워집니다. 점수가 곧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규칙이 우리의 일과 살림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지렁이 게임은 어떻게 휴대전화에 들어갔나
1997년, 핀란드 노키아의 프로그래머 타넬리 아르만토는 새 휴대전화 6110에 넣을 게임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조건은 가혹했습니다. 화면은 가로 84칸, 세로 48칸짜리 흑백 액정이었고, 누를 수 있는 단추는 몇 개뿐이었고, 저장 공간도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 떠올린 후보는 테트리스였는데 저작권 문제로 접었다고 합니다. 그가 예전에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해 본 뱀 게임이 떠올랐고, 그것이 답이 됐습니다. 디자인 매체 잇츠 나이스 댓과 한 인터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뿌리는 더 오래됐습니다. 1976년 오락실 게임 '블록케이드'가 원조로 꼽히고, 그 뒤로 비슷한 게임이 여러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노키아판은 그 가운데 가장 멀리 퍼진 판본입니다. 미국 멜 매거진의 정리로는 3억 5천만 대가 넘는 전화기에 실렸습니다. 숫자 단추로 방향을 틀던 그 작은 흑백 화면을 버스 안에서, 은행 대기석에서 들여다본 기억이 있는 분이 적지 않을 겁니다.
아르만토가 넣은 배려가 하나 있습니다. 벽에 부딪히기 직전, 몇 밀리초의 틈을 줬습니다. 그 찰나에 방향을 바꾸면 살 수 있게요. 그는 "플레이어를 조금 도와서 짜증을 덜어 주면 왜 안 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 배려는 벽 앞에서만 통합니다. 내 몸이 화면을 메워 가는 것은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점수가 장애물이 되는 구조
대부분의 게임에서 성과는 힘이 됩니다. 점수를 모으면 무기가 세지고, 목숨이 늘고, 다음 판이 쉬워집니다. 지렁이 게임은 반대입니다. 먹이 하나를 먹을 때마다 화면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한 칸 늘고, 움직일 수 있는 자리는 한 칸 줄어듭니다. 화면 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인데 말이죠.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길어진 몸이 '과거의 나'라는 것입니다. 꼬리는 내가 30초 전에 지나온 길입니다. 그때는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먹이가 거기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선택들이 사라지지 않고 화면에 남아, 지금의 내가 갈 길을 막습니다.

현실에서도 같은 모양을 자주 봅니다.
- 일: 일을 잘하면 일이 더 옵니다. 맡은 것이 하나둘 늘다 보면 어느 날 달력에 빈칸이 없습니다. 새 기회가 와도 받을 자리가 없죠.
- 돈: 벌이가 늘 때 함께 늘린 고정 지출이 그렇습니다. 할부, 정기 결제, 넓힌 집의 관리비. 하나하나는 그때의 형편에 맞는 선택이었는데, 합쳐 놓으면 방향을 틀 여유를 줄입니다.
- 관계와 약속: 거절하지 못해 받아 둔 모임과 직함도 꼬리가 됩니다.
게임과 현실이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꼬리를 자를 수 없지만, 현실에서는 자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생각을 잘 못 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빼기'를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2021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가 있습니다. 게이브리얼 애덤스와 라이디 클로츠 등 연구자 네 사람이 쓴 논문으로, 제목부터가 '사람들은 빼는 변화를 체계적으로 놓친다'입니다. 연구진은 여덟 가지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물건이나 글, 구조물을 고쳐 보라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무언가를 더하는 해결책을 먼저 떠올렸고, 빼는 쪽이 더 나은 답일 때도 그것을 잘 찾지 못했습니다. 빼도 된다는 귀띔이 없을 때, 다시 생각할 기회가 적을 때, 머리가 다른 일로 바쁠 때 그 경향이 더 뚜렷했습니다. 제가 확인한 범위는 논문 초록입니다.
연구진은 이 버릇이 꽉 찬 일정표와 복잡해지기만 하는 조직 규정의 한 원인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지렁이 게임의 화면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먹이를 먹는 법은 금방 배우지만, 몸을 줄이는 법은 따로 떠올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먹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해하기 쉬운 곳을 짚어 둡니다. 이 게임의 교훈은 '욕심내지 마라'가 아닙니다. 먹이를 먹지 않으면 점수가 없습니다. 게임을 오래 하는 사람들은 먹이를 피하지 않습니다. 대신 먹기 전에 한 가지를 봅니다. 저걸 먹고 난 뒤 내 꼬리가 어디를 지나가게 되는가.
오래 버티는 요령으로 흔히 꼽히는 것이 있습니다. 몸통을 아무렇게나 엉키게 두지 않고 가장자리를 따라 가지런히 접어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운데에 빈자리가 남습니다. 길이는 같아도 놓인 모양이 다르니 움직일 자리가 남습니다. 성과의 크기가 아니라 성과를 쌓아 두는 방식이 다음 수를 정합니다.
이 원리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쌓일수록 정말로 힘이 되는 것들입니다. 기술, 신뢰, 건강 같은 것은 화면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면을 넓혀 주죠. 그러니 구분이 필요합니다. 내가 쌓고 있는 것이 계속 돌봐야 하는 것인지, 한 번 얻으면 나를 받쳐 주는 것인지요. 앞의 것만 꼬리가 됩니다.
내일부터 써 볼 한 가지
새 일, 새 약속, 새 정기 결제를 받기 전에 질문 하나를 붙여 보세요. "이걸 받으면 매달 무엇을 계속 해야 하나." 얻는 것은 누구나 계산합니다. 꼬리가 지나갈 자리, 그러니까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은 따로 물어야 보입니다.
그리고 석 달에 한 번쯤은 거꾸로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는 것 가운데 그만둬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네이처 논문이 보여 주듯 이 질문은 저절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달력에 적어 두어야 떠오릅니다.

지렁이 게임에는 적이 없습니다. 끝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지나온 내 길입니다. 다행히 우리 화면에서는, 꼬리를 접어 둘 수도 있고 잘라 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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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t's Nice That, 타넬리 아르만토 인터뷰: 1997년 노키아 6110, 화면 크기, 테트리스 대신 고른 이유, 충돌 직전의 여유
- MEL Magazine, 스네이크 구술사: 1976년 블록케이드, 3억 5천만 대 이상 탑재, 개발 당시의 제약
- Adams, Converse, Hales, Klotz (2021), People systematically overlook subtractive changes, Nature 592, 258–261: 여덟 가지 실험, 더하기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초록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