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역사, 지갑을 두고 온 저녁 한 끼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사실일까요: 1950년 종이 카드와 1969년 우리나라 첫 카드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고, 단말기에 꽂고, 영수증도 받지 않고 돌아서는 일.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생각할 틈도 없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돈을 한 푼도 건네지 않고 물건을 들고 나오는 이 일이, 처음에는 꽤 이상한 약속이었습니다.
신용카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약속이 언제 누구의 손에서 시작됐는지, 그리고 왜 하필 식당에서였는지가 보입니다. 오늘은 그 시작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신용카드 역사 이전: 외상은 가게와 손님 둘만의 약속이었다
신용카드가 나오기 전에도 '나중에 갚기'는 있었습니다. 동네 가게의 외상 장부가 그랬죠. 다만 그 약속은 늘 가게와 손님 둘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단골이라 믿어 주는 가게에서만 통했고, 다른 동네 가게에 가면 소용이 없었습니다. 백화점이나 주유소가 자기 손님에게만 주는 카드도 있었지만, 그 카드 역시 그 가게 안에서만 쓸 수 있었습니다.
신용카드가 바꾼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가게와 손님 사이에 제3자 회사가 끼어들어 "이 사람 밥값은 우리가 먼저 내고, 나중에 이 사람에게 받겠습니다"라고 약속해 준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가는 식당에서도 외상이 됩니다.
신용카드 역사의 시작, 1950년 다이너스 클럽
그 제3자 회사가 다이너스 클럽입니다. 영어 위키백과와 미국 지역 매체 RWC 펄스의 정리에 따르면, 1950년 2월 8일 프랭크 맥나마라가 변호사 랠프 슈나이더와 함께 세웠습니다. 이름부터 '식사하는 사람들(diners)의 모임(club)'입니다. 처음에는 두꺼운 종이로 만든 카드였고, 플라스틱 카드는 1960년대에 나왔습니다.
구조는 지금 카드와 거의 같았습니다. 회원은 한 해에 5달러를 냈고, 카드를 받아 준 식당은 결제 금액의 7%를 수수료로 냈습니다. 회원은 한 달 동안 쓴 돈을 월말에 한꺼번에 갚았습니다. 손님은 지갑이 가벼워지고, 식당은 손님이 늘고, 카드 회사는 양쪽에서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출발 규모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위키백과와 RWC 펄스는 처음에 뉴욕 식당 27곳과 약 200명으로 시작해 그해 말 회원이 2만 명이 됐다고 적습니다. 반면 다이너스 클럽 공식 누리집은 첫해 회원 1만 명, 식당 28곳과 호텔 두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어느 쪽이든 1년도 안 돼 수천 배로 커졌다는 점은 같습니다.

'최초의 만찬' 이야기는 얼마나 사실일까
이 회사에는 유명한 탄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9년 맥나마라가 뉴욕의 식당 메이저스 캐빈 그릴에서 밥을 먹고 계산하려는데 지갑을 놓고 온 것을 알았고, 결국 아내가 와서 값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그 창피함에서 카드를 떠올렸고, 이듬해 2월 같은 식당에서 종이 카드로 첫 결제를 했다고 합니다. 회사는 이 식사를 '최초의 만찬(The First Supper)'이라 불러 왔고, 지금도 공식 누리집에 그렇게 소개합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회사의 첫 홍보 담당자이자 공동 창업자로 꼽히는 매티 시먼스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며 지어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식사가 점심이었는지 저녁이었는지, 값을 어떻게 치렀는지도 전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국내 카드 정보 매체 카드고릴라도 이 일화를 '여러 버전이 전해지는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1950년 다이너스 클럽이 여러 식당에서 쓰는 카드를 처음 널리 퍼뜨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갑을 두고 온 저녁 이야기는 회사가 들려주는 탄생 설화이고,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속설에 가깝습니다.
신용카드가 퍼진 결정적 계기, 은행이 뛰어들다
다이너스 클럽의 카드는 한 달 쓴 돈을 다음 달에 다 갚아야 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외상 카드'에 가까웠죠. 1958년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보라색 종이 카드로 뛰어들었고(RWC 펄스), 같은 해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뱅크아메리카드를 내놓았습니다. 카드고릴라에 따르면 이 카드가 쓴 돈을 나눠 갚는 '리볼빙'을 처음 들여왔고, 1976년 이름을 비자(VISA)로 바꿨습니다.
은행이 뛰어들면서 카드는 식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은행은 이미 수많은 예금 고객과 가게 계좌를 쥐고 있었으니까요. '나중에 한꺼번에'에서 '나눠서 천천히'로 바뀐 이 변화가, 오늘날 카드 할부와 리볼빙의 뿌리입니다.

우리나라 첫 신용카드는 언제일까, 1969년과 1967년
우리나라에서는 백화점이 먼저였습니다. 전자신문(2013년)은 1969년 7월 신세계백화점이 자기 백화점 물건을 더 팔기 위해 고객 카드를 발급한 것을 국내 신용카드의 시작으로 소개합니다. 디지털타임스(2026년)와 카드고릴라도 1969년을 적고, 카드고릴라는 이것이 한국 최초의 신용카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덧붙입니다. 다만 경기일보(2014년)는 1967년으로 적고 있어 연도는 자료마다 갈립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 자료가 함께 적는 1969년을 따르되, 1967년이라는 기록도 있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백화점 카드는 그 백화점에서만 쓸 수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쓰는 은행 카드는 1978년 외환은행이 비자와 손잡고 발급하면서 시작됐다는 데 경향신문·전자신문·카드고릴라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처음에는 해외여행자가 대상이었습니다. 1980년 국민은행이 카드 업무를 시작했고, 1982년 다섯 은행이 함께 은행신용카드협회(지금의 BC카드)를 세웠습니다. 1987년에는 신용카드업법이 만들어지며 대기업 계열 카드사가 등장했습니다.
40~60대라면 이 무렵을 기억하실 겁니다. 백화점 카드를 처음 받아 들던 때, 그리고 은행 창구에서 카드를 처음 만들던 때 말이죠.
신용카드가 지금 우리 생활에 남긴 것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처음 가는 가게에서도 '믿을 만한 손님'이 됩니다. 쓴 돈이 기록으로 남아 가계부 노릇도 합니다. 1950년 식당 몇 곳에서 시작한 약속이, 경기일보 보도로는 2002년 우리나라에서만 카드 1억 장을 넘길 만큼 퍼졌습니다.
치른 값도 있습니다. 다이너스 클럽이 처음부터 받던 가게 수수료는 지금도 가게가 내는 '카드 수수료'로 남아 있고, 그 비용은 결국 물건값 어딘가에 들어 있습니다. 나눠 갚는 편리함은 빚을 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카드가 너무 빠르게 퍼진 끝에 2003년 '카드대란'이라 불리는 신용 위기를 겪었습니다.

신용카드 역사가 남긴 한 줄
신용카드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라 '처음 보는 가게도 나를 믿게 만드는 약속'이었습니다. 카드를 내밀 때마다 그 약속의 값, 곧 수수료와 나중에 갚을 돈을 함께 내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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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어 위키백과, Diners Club International: 1950년 2월 8일 설립, 맥나마라·슈나이더, 최초의 만찬 이야기와 매티 시먼스의 '지어낸 이야기' 증언, 식당 27곳·약 200명, 회원 2만 명, 가게 수수료 7%·연회비 5달러, 1961년 플라스틱 카드
- 다이너스 클럽 공식 누리집, It all began with a forgotten wallet: 1949년 지갑 일화, 1950년 2월 첫 결제, 첫해 회원 1만 명·식당 28곳·호텔 2곳, 종이에서 플라스틱으로
- RWC 펄스, The birth of the modern credit card(2026-04-03): 1950년 2월 8일, 식당 27곳·약 200명, 회원 2만 명·4만 2천 명, 수수료 7%·연회비 5달러, 195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 카드고릴라, 신용카드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 '최초의 만찬': 여러 버전의 일화, 1958년 뱅크아메리카드와 리볼빙, 1976년 비자, 1969년 신세계·기네스북, 1978년 외환은행
- 전자신문,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신용카드(2013-11-19): 1969년 7월 신세계 고객카드, 1978년 외환은행 VISA 해외여행자 대상, 1980년 국민은행, 1982년 BC카드, 1987년 신용카드업법
- 디지털타임스(2026-06-03): 1969년 대한민국 최초 신용카드 '신세계카드'
- 경기일보(2014-03-13): 1967년 신세계백화점카드, 1978년 외환은행, 1980년 국민카드, 1982년 은행신용카드협회, 2002년 1억 장
- 경향신문(2015-07-12): 1978년 외환은행·비자 제휴가 한국 신용카드의 효시, 2003년 카드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