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채팅 언제부터, 모뎀 소리가 나면 열리던 밤샘 대화방은 왜 사라졌을까요: 1980년 미국에서 2024년 천리안 종료까지 (응답하라 1997 4화)

휴대전화 모임 단톡방에 “오늘 저녁 번개 어때요?” 한 줄이 올라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답이 달리고 약속이 잡힙니다. 만나기 전에 글자로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이제는 이렇게 조용하고 당연하죠. 그런데 이 일이 소리부터 요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화선에 모뎀을 연결하면 ‘뚜뚜, 삐~’ 소리가 나고, 파란 화면에 하얀 글자가 떴거든요. 그 화면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밤새 글자로 이야기했고, 마음이 맞으면 실제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PC통신 채팅은 언제 시작됐고, 그 대화방은 왜 사라졌을까요. 시작은 생각보다 이르고, 끝은 생각보다 최근입니다.
드라마 한 장면에서 출발해 볼게요.

응답하라 1997 4화: 서울 남자와 채팅을 시작한 시원
응답하라 1997 4화에서 부산의 여고생 시원은 꿈에 그리던 서울 남자와의 채팅을 시작하고 가슴이 설렙니다. 2012년 7월 31일 방송된 4화의 제목은 ‘페어 플레이’인데, 이 내용은 방송 정보 사이트 TheTVDB의 회차 소개에 나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 출연진 표에는 ‘시원이의 채팅남(4회)’ 역까지 올라 있더군요. 채팅 상대가 아예 배역 이름이 된 셈이죠. 드라마 속 채팅 이야기는 당시 기사에도 나옵니다. 텐아시아(2012년 8월 8일)는 이 드라마가 당시 유행하던 채팅방의 대화까지 꼼꼼하게 구현했다고 적었습니다. OSEN(2012년 8월 22일)은 소품으로 PC통신 하이텔이 나온다고 전했고요. 다만 4화의 채팅이 어느 서비스의 화면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 대화방에서 밤을 새워 본 분이라면 이 설렘이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그 채팅이 어디서 왔는지 따라가 보죠.
PC통신 채팅이란: 전화선으로 글자를 주고받는 대화방
PC통신 채팅은 전화선으로 통신 업체의 컴퓨터에 접속해, 같은 방에 모인 사람들과 글자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입니다. 쉽게 말해 전화를 걸듯 업체 컴퓨터에 들어가, 그 안의 방에서 여럿이 글자로 이야기한 거예요. PC통신은 전화망을 이용한 서비스였습니다(전자신문, 2024년 10월 31일). 쓰려면 컴퓨터에 모뎀을 갖추고 업체와 사용 계약을 맺어야 했고요(서울신문, 1993년 3월 29일). 컴퓨터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하이텔에는 ‘대화방’이 있었습니다. 그 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IT동아(2018년 6월 22일)는 사람들이 여기서 인연을 맺어 친구나 연인이 되기도 했다고 적었습니다. 화면 속 낯선 아이디가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기도 했다는 얘기죠.
그 시절 대화방의 모습은 훗날 되살아나기도 했어요. 2012년 세이클럽은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의 채팅 스타일을 재현한 서비스를 열었습니다. 게임메카(2012년 9월 7일)는 여기에 ‘귓속말’ 같은 명령어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단어 하나로도 그 방 분위기가 그려지죠.
언제 시작됐나: 1980년 미국의 ‘CB’, 1980년대 중반 천리안
일반인에게 열린 첫 채팅 서비스로 꼽히는 것은 1980년 2월 21일 미국 컴퓨서브가 낸 ‘CB’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하신 분도 있을 거예요. 위키백과는 이 서비스가 시민 밴드(CB) 무전기를 본떠 채널로 나뉘어 있었다고 적습니다. 일반인에게 널리 열린 첫 전용 채팅 서비스였다는 설명도 함께 나와요. 무전기에서 채널을 맞추듯, 이야기할 곳을 골라 들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인터넷 역사 사이트 리빙 인터넷(Living Internet)도 이를 첫 공개 상업 채팅 프로그램으로 소개합니다. 다만 ‘최초’ 이야기에는 늘 단서가 붙기 마련이죠. ‘첫’의 기준을 달리하면 1973년 PLATO 시스템의 ‘토커매틱’을 꼽는 설명도 있습니다(위키백과).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였을까요? 우리나라 PC통신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됩니다. 전자신문(2024년 10월 31일)을 보면 천리안이 1985년 서비스를 시작했더군요. 같은 기사는 천리안이 하이텔, 나우누리와 함께 ‘3대 PC통신사’로 국내 시장을 이끌었다고 적었습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죠. SBS Biz(2024년 7월 9일)도 천리안이 1985년 PC통신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이 세 이름이 그 시절 대화방의 문패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시작 시기는 자료마다 조금씩 엇갈립니다.
천리안의 출발은 1985년(전자신문·SBS Biz)과 1984년 5월 전자사서함 서비스(정글매거진, 2007년)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하이텔의 전신 케텔도 1988년(IT동아)과 1989년 11월(정글매거진)로 갈립니다. 미국의 CB와 우리나라 대화방이 직접 이어졌는지, 우리나라 PC통신에 채팅이 언제 생겼는지는 두 곳 이상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매일신문(2014년)은 PC통신을 통한 만남이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고 보지만, 이 시기는 한 곳에서만 확인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어땠나: 모뎀 소리, 파란 화면, 전화요금
그 시절 채팅은 모뎀으로 전화선을 연결해야 시작됐고, 쓰는 시간만큼 전화요금이 붙었습니다. 접속할 때마다 소리가 먼저 났죠. 세계일보 칼럼(2022년 3월 6일)에 따르면 모뎀이 ‘뚜뚜, 삐~’ 소리를 낸 뒤에야 파란 바탕에 흰 글씨 화면이 떴습니다. 그 소리가 그쳐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됐던 거죠.
2012년 세이클럽이 되살린 ‘추억의 PC통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접속할 때 모뎀 소리를 내고, 파란 바탕 화면에서 글자를 주고받게 했으니까요(게임메카). 추억을 되살리는 데 그 소리가 빠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해가 지면 대화방이 깨어나곤 했죠. 매일신문(2014년 4월 26일)은 밤이 되면 젊은이들이 PC통신에 접속해 채팅방을 만들고 밤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썼습니다. 정글매거진(2007년 3월 20일)은 채팅으로 만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문화도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글자로만 알던 사람을 처음 만나러 가는 날도 그렇게 생겨났고요.
하이텔의 월 사용료는 9,900원이었고(서울신문 1993년, IT동아 2018년), 접속해 있는 시간의 전화요금은 따로 냈습니다. 전화선을 쓰는 서비스라 집 전화가 자주 통화 중이 되어 부모의 화를 사기도 했다고 세계일보는 적었고, OSEN은 누군가 수화기를 드는 바람에 통신이 끊기는 일도 드라마에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전화 한 대를 온 식구가 함께 쓰던 집이라면, 거실에서 “전화 좀 쓰자!” 하는 소리가 날 법도 했겠죠.

어떻게 바뀌었나: 인터넷이 열리자 대화방은 문을 닫았다
PC통신이 사라진 이유는 웹(WWW) 기반 인터넷의 보급입니다. 전자신문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PC통신이 사라졌다고 적었습니다.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이 차례로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거죠. SBS Biz는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이용자가 급감했다고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더 넓은 길이 뚫리자 사람들이 그쪽으로 옮겨 간 겁니다.
문을 닫기 전에 조짐은 없었을까요? 변화는 일찍 시작됐습니다. 1998년 5월 매일신문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동호회, 채팅 등 PC통신과 유사한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PC통신이 잘하던 일을 인터넷이 넘보기 시작한 거죠. 1999년 8월 서울신문은 하이텔이 텍스트 기반 환경을 인터넷 기반으로 전면 개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이텔 스스로도 인터넷 쪽으로 옮겨 갈 채비를 했던 거예요.
하이텔은 2007년에, 천리안은 2024년 10월 31일에 서비스를 끝냈습니다. 천리안은 39년을 버텼네요. 나우누리는 조금 복잡합니다. 종료 시점을 SBS Biz는 2012년, 프레시안은 2013년 1월 31일로 다르게 적었더군요. 그래서 나우누리의 종료 연도는 하나로 정해 적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있는데요. 드라마가 방영 중이던 2012년 9월 7일, 세이클럽은 PC통신 시절의 텍스트 채팅을 되살린 서비스를 열었다고 밝혔습니다. 게임메카와 시대(2012년 9월 18일)가 전한 내용입니다. 게임메카는 응답하라 1997에 PC통신 속 채팅이 나와 화제가 된 일도 함께 언급했어요. 그 시절 대화방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연 셈입니다.
정모 뜻과 번개 뜻: PC통신 채팅이 남긴 말
‘정모’는 ‘정기모임’의 줄임말이고, ‘번개’는 채팅으로 약속을 빠르게 정해 만나는 모임을 가리킵니다. 정글매거진(2007년 3월 20일)의 풀이입니다. 번개는 이름만 들어도 속도가 느껴지죠. 서비스는 문을 닫았지만 두 말은 남았습니다.
전자신문과 세계일보는 PC통신으로 동호회 붐이 일면서 ‘정모’, ‘번개’, ‘방가방가’ 같은 말이 생기고 퍼졌다고 적었습니다. 누군가 대화방에 들어서자마자 “방가방가”가 올라오는 화면을 그려 보면,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반갑죠.
매일신문(2014년)은 PC통신과 삐삐가 이성 간 만남의 도구였다고 짚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을 ‘기술 따라, 만남도 진화한다’는 제목으로 묶었죠. 글자로 먼저 말을 트고, 마음이 맞으면 만나는 순서. 저는 이 순서가 도구만 바뀐 채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모뎀 자리에 휴대전화가 들어섰을 뿐이라는 거죠.
오늘의 한 줄
시원의 채팅은 드라마 속 설렘으로 남았습니다. 그 대화방을 열어 주던 3대 PC통신은 2024년 10월 31일 천리안을 끝으로 모두 문을 닫았고요. 서비스는 사라졌어도 정모와 번개라는 말은 남았습니다.
첫머리의 단톡방으로 돌아가 보면, “오늘 저녁 번개 어때요?”의 번개도 PC통신 시절에 생기고 퍼진 말입니다. 그 시절 대화방에서 알게 된 이름이 하나 떠오른다면, 오늘은 안부 한 줄을 먼저 보내 보세요. 그때도 만남은 글자 한 줄에서 시작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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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래 자료는 모두 2026년 10월 19일에 열어 확인했습니다.
- TheTVDB, 응답하라 1997 회차 소개: 4화 ‘페어 플레이’(2012년 7월 31일), 시원이 꿈에 그리던 서울 남자와 채팅을 시작하고 설레어 함
https://thetvdb.com/series/answer-me-1997/allseasons/official
- 한국어 위키백과, 응답하라 1997: 출연진 표의 ‘시원이의 채팅남(4회)’
https://ko.wikipedia.org/wiki/%EC%9D%91%EB%8B%B5%ED%95%98%EB%9D%BC_1997
- 나무위키, 응답하라 1997: 방송 목록의 ‘4화 페어 플레이 2012.07.31.’
https://namu.wiki/w/%EC%9D%91%EB%8B%B5%ED%95%98%EB%9D%BC%201997
- 텐아시아(2012년 8월 8일), 열여덟의 시원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당시 유행하던 채팅방의 대화까지 구현한 1997년의 풍경
https://www.tenasia.co.kr/article/2020012332214
- OSEN(2012년 8월 22일), ‘응답하라’ N세대의 무릎을 치게 한 번뜩이는 순간들④: 소품 PC통신 하이텔, 수화기 때문에 통신이 끊기는 일화
https://www.osen.co.kr/article/G1109455319
- 전자신문(2024년 10월 31일), 천리안 서비스 종료: 1985년 시작, 3대 PC통신사, 전화망 이용, 정모·번개·방가방가, 인터넷 보급과 하이텔·나우누리·유니텔의 서비스 중단
https://m.etnews.com/20241031000246
- SBS Biz(2024년 7월 9일), 천리안 10월 31일 종료: 1985년 PC통신으로 시작, 2000년대 인터넷 활성화로 이용자 급감, 하이텔 2007년·나우누리 2012년 중단
https://biz.sbs.co.kr/amp/article/20000180649
- IT동아(2018년 6월 22일), 추억으로 남은 온라인 문화의 고향, PC통신 하이텔: 대화방, 월 9,900원과 전화요금, 케텔 1988년, 2007년 서비스 종료
https://v.daum.net/v/oj8uEWI7wa
- 정글매거진(2007년 3월 20일), 잊혀지는 PC통신: 채팅 서비스, 오프라인 만남, 번개·정모 풀이, 전화비 부담, 천리안 1984년 5월, 케텔 1989년 11월
https://www.jungle.co.kr/magazine/2730
- 세계일보(2022년 3월 6일), 마지막 PC통신: 모뎀 소리와 파란 화면, 통화 중과 부모의 화, 정모·번개·방가방가
https://www.segye.com/newsView/20220306509477
- 매일신문(2014년 4월 26일), 기술 따라, 만남도 진화한다: 채팅방과 밤샘 대화, 삐삐, 만남의 시작 시기
https://www.imaeil.com/page/view/2014042608311882136
- 서울신문(1993년 3월 29일): PC에 모뎀 설치, 사용 계약, 하이텔 월 사용료 9,900원
https://www.seoul.co.kr/news/1993/03/29/19930329016001
- 매일신문(1998년 5월 21일), 인터넷 PC통신 장벽파괴: 인터넷 업체의 동호회·채팅 콘텐츠 개발
https://www.imaeil.com/page/view/1998052115110041395
- 서울신문(1999년 8월 20일), PC통신 6大업체 무한투자 선언: 하이텔의 인터넷 기반 개편 계획
https://m.seoul.co.kr/news/1999/08/20/19990820011002
- 프레시안(2013년 2월 10일), 굿바이, PC통신…‘우린 신인류였어’: 나우누리 폐쇄(1월 31일)
https://pressian.com/pages/articles/40424
- 게임메카(2012년 9월 7일), 추억 속 PC통신, 세이클럽에서 오픈: 모뎀 소리·파란 화면 재현, ‘귓속말’ 명령어, 응답하라 1997 속 PC통신 채팅 화제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03555
- 시대(2012년 9월 18일), 추억, X세대를 불러내다: 9월 7일 세이클럽의 PC통신 재현
https://www.sidae.com/article/2012091321578050802
- 위키백과(영어판), CB Simulator: 1980년 2월 21일 컴퓨서브 CB, CB 무전기 방식, 일반인에게 열린 첫 전용 채팅 서비스
https://en.wikipedia.org/wiki/CB_Simulator
- 위키백과(영어판), Online chat: 1973년 PLATO 시스템의 토커매틱
https://en.wikipedia.org/wiki/Online_chat
- Living Internet, CompuServe CB: 1980년 2월 21일 시작, 첫 공개 상업 채팅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