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 게임 회사가 아니라 유저가 롤을 낳았다: 1998년 지도 편집기에서 나온 Aeon of Strife·도타·리그 오브 레전드 계보

이를테면 1990년대 말 PC방에서 누군가 정식 대전 대신 디스켓 한 장을 내밀며 "내가 만든 지도인데 이거 한번 해 보자" 하고 말을 거는 장면입니다. 옆자리 사람은 "영웅 하나만 키우는 게 무슨 스타야" 하고 웃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로 이용자가 만든 지도 한 장이 몇 년 뒤 도타가 되고, 다시 리그 오브 레전드(롤)가 됐습니다. 게임 회사가 아니라 이용자가 다음 장르를 낳은 계보를 처음부터 따라가 보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가 처음 한 것, 지도에 규칙을 심다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가 처음 한 일은 지도 위에 규칙을 심게 한 것입니다. 게임메카의 2015년 4월 13일 장르 기획 기사는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2부터 맵 편집기를 게임에 넣었고,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더 완성도 높은 에디터를 실었다고 정리했어요. 핵심은 '트리거'였습니다.
트리거 덕분에 이용자들은 자원을 캐고 기지를 짓는 실시간 전략과 전혀 다른 놀이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기사가 꼽은 예가 블러드, 디펜스, 컨트롤 같은 유즈맵이에요. 해외 게임 매체 MMOs.com의 2015년 5월 26일 기사도 이 편집기를 'StarEdit'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1998년에 나온 게임 안에 들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어디서 왔나, 듄2와 워크래프트가 깔아 둔 길
스타크래프트는 1992년 듄2가 연 실시간 전략 장르 위에 서 있습니다. 게임메카가 2007년 12월 14일 낸 블리자드 역사 기사는 웨스트우드의 듄2를 최초의 실시간 전략 게임으로 평가하고, 블리자드의 첫 실시간 전략 게임인 1994년 워크래프트가 출시 당시 듄2를 따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다만 워크래프트는 마우스로 끌어 여러 유닛을 한꺼번에 고르는 방식을 들여왔어요.
미국 게임 매체 게임스팟도 2018년 4월 8일 기사에서 듄2, 워크래프트, 커맨드 앤 컨커를 초기 실시간 전략의 기수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1998년 3월,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습니다.
| 해 | 게임·지도 | 만든 쪽 | 무엇을 남겼나 |
|---|---|---|---|
| 1992 | 듄2 | 웨스트우드 | 실시간 생산·전투 |
| 1994 | 워크래프트 | 블리자드 | 끌어서 여러 유닛 고르기 |
| 1998 | 스타크래프트 + 맵 에디터 | 블리자드 | 트리거로 규칙을 바꾸는 유즈맵 |
| 2001~2002 | Aeon of Strife | 이용자 Aeon64 | 영웅 하나를 키우는 대전 |
| 2003 | DotA | 이용자 Eul | 장르의 기준 |
| 2009 | 리그 오브 레전드 | 라이엇게임즈 | 독립된 게임으로 |

이어받은 게임, Aeon of Strife에서 도타로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로 만든 지도 가운데 역사를 바꾼 것은 Aeon of Strife입니다. 게임메카 2015년 기사에 따르면 2001년 말 Aeon64라는 이용자가 만들었고, 처음엔 네 사람이 영웅 하나씩을 맡아 몰려오는 적을 막는 디펜스 꼴이었다가 2002년 2.0판에서 2대 2 대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이름의 머리글자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게임을 부르는 말 'AOS'가 됐고요.
MMOs.com 기사는 이 지도를 두 팀, 세 갈래 길, 컴퓨터가 움직이는 졸병, 영웅을 키우는 롤플레잉 요소를 갖춘 첫 사례로 소개합니다. 적 영웅과 졸병을 잡으면 미네랄을 얻어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리는 방식이었다고 해요.
그다음은 블리자드의 다음 게임 워크래프트 3였습니다. 2002년 하반기에 나온 이 게임의 편집기로 이용자 율(Eul)이 2003년 'Defense of the Ancients', 곧 DotA를 내놓았고, 게임메카는 이를 장르의 기준이 된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뒤를 이은 도타 올스타즈는 구인수(Guinsoo)와 아이스프로그(IceFrog)가 다듬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도타 카오스가 따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지금 게임까지, 롤과 도타 2
계보의 끝에 리그 오브 레전드가 있습니다. 게임메카 기사는 2009년 말 미국에서 나온 롤을 구인수가 라이엇게임즈에서 만든 작품으로 소개하고, 국내 정식 서비스는 2011년에 시작됐다고 적었어요. 밸브는 율과 아이스프로그를 데려와 도타 2를 만들었고요. 'MOBA'라는 장르 이름은 라이엇이 지었다고 MMOs.com이 전합니다.
여기서 잠깐 곁가지 하나. 지도 한 장에서 시작한 이 흐름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크게 자랐습니다. 게임스팟 2018년 기사는 스타크래프트 대회 상금 743만 달러 가운데 681만 달러가 한국 대회에서 나왔고, 상금 상위 100명 중 92명이 한국 선수라고 집계했어요. 지도를 만들고 나누던 PC방 문화가 그 바탕이었다고 보는 건 제 해석입니다.
Aeon of Strife를 만든 이용자의 실명과 정확한 공개 날짜는 기사마다 '2001년 말'로만 적혀 있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름 표기도 Aeon64와 Aoen64가 섞여 있습니다.

왜 살아남았나, 도구를 같이 준 설계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가 남긴 인사이트는 도구를 같이 주면 이용자가 다음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블리자드가 공식으로 만든 건 실시간 전략 게임 하나였지만, 그 안에 넣은 편집기 하나가 디펜스, 컨트롤, 그리고 AOS라는 장르를 이용자 손으로 낳았어요. 영웅 하나를 키우는 재미는 회사의 기획서가 아니라 이용자들의 지도에서 먼저 시험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게임 밖에서도 그대로 읽힙니다. 회사에서 보고서 양식을 완성본으로 내려보내는 팀과, 고칠 수 있는 틀과 규칙만 건네는 팀은 반년 뒤 결과가 다르죠. 앞쪽은 양식이 낡으면 끝나지만, 뒤쪽은 쓰는 사람이 스스로 새 칸을 만들어 냅니다.
완성품보다 고칠 수 있는 도구를 건넬 때, 다음 장르는 쓰는 사람 손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내일 누군가에게 일을 맡긴다면, 결과물 대신 틀과 규칙을 먼저 건네 보려 합니다.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가 그랬듯 생각지도 못한 지도가 돌아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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