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 컴퓨터 학원이나 친구 집에서 녹색, 파란색, 노란색 네모를 깔며 도시를 만들던 게임이 있었습니다. 심시티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처음 나왔을 때 이기는 방법도, 지는 방법도 없다는 이유로 큰 출판사들에게 거절당했습니다. 끝이 없는 게임은 어디서 왔고, 그 뒤 어떤 게임들이 이 생각을 이어받았을까요.

심시티가 처음 한 것: 이기는 법이 없는 게임
심시티는 정해진 목표가 없는 도시 건설 게임입니다. 1989년 2월 미국에서 매킨토시와 아미가, 도스용으로 처음 나왔고, 만든 사람은 윌 라이트입니다(영문 위키백과). 플레이어는 땅을 주거·상업·공업 세 가지 구역으로 나누고, 도로와 전기를 깔고, 세금을 정합니다. 그러면 화면 속 시민들이 교통, 전기, 범죄, 이웃 건물 같은 조건을 보고 스스로 집과 가게와 공장을 짓습니다.
이 게임에는 끝판 보스도 엔딩도 없습니다. 미국 놀이박물관(더 스트롱)의 ‘세계 비디오게임 명예의 전당’은 2024년 심시티를 올리면서, 이 게임은 정해진 목표가 없고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는 플레이어가 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점수나 엔딩 대신 ‘내가 원하는 도시’를 목표로 삼게 했습니다. 윌 라이트는 이 게임을 게임이 아니라 ‘장난감’이라고 자주 불렀습니다.
어디서 왔나 ① 헬리콥터 게임의 지도 편집기
심시티의 출발점은 다른 게임입니다. 윌 라이트는 1984년 헬리콥터 공격 게임 ‘레이드 온 벙글링 베이’를 만들었는데, 게임 속 섬을 그리는 지도 편집기를 만지는 일이 게임을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영문 위키백과와 더 스트롱 명예의 전당 소개가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폭탄을 떨어뜨릴 섬을 그리다 보니, 거기에 도로를 놓고 건물을 세우는 쪽에 마음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점점 더 정교한 편집기를 만들었고, 1985년 코모도어 64용 첫 판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이 판은 1989년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왔나 ② 도시를 수식으로 본 책 한 권
두 번째 뿌리는 책입니다. 더 스트롱은 심시티의 계산 방식이 제이 포레스터의 책 ‘도시 동역학(Urban Dynamics)’과 콘웨이의 ‘생명 게임’ 같은 세포 자동자에서 왔다고 적었습니다. 영문 위키백과도 1969년에 나온 포레스터의 책이 게임의 기초를 놓았다고 정리합니다.
위키백과는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단편 ‘일곱 번째 여행’도 영감이 됐다고 적었습니다. 쫓겨난 독재자가 다스릴 작은 인공 도시를 기술자가 만들어 주는 이야기입니다.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다스린다는 생각은 이렇게 소설과 공학 양쪽에서 함께 왔습니다.
거절당한 이유: 끝이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게임은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당시 출판사들의 판단이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대형 출판사 브로더번드가 처음에 거절했고, 다른 큰 회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제프 브라운이 세운 작은 회사 맥시스가 이 게임을 내기로 했고, 1988년 두 사람이 다시 찾아갔을 때 브로더번드가 유통을 맡았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반대였습니다. 심시티는 1989년 미국 게임 잡지 ‘컴퓨터 게이밍 월드’의 올해의 게임에 뽑혔고, 1991년에는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게임이 됐습니다(더 스트롱). 1992년 말까지 컴퓨터판과 슈퍼 패미컴판을 합쳐 약 100만 장이 팔렸습니다(영문 위키백과).
이어받은 게임들: 도시에서 개미, 사람의 집까지
맥시스는 같은 생각을 다른 판에 옮겼습니다. 더 스트롱은 그 뒤를 이은 게임으로 심어스, 심앤트, 심즈를 꼽았습니다. 지구 전체를 다루고, 개미 군집을 다루고, 마침내 한 사람의 집과 하루를 다룬 것입니다. 위키백과는 심즈가 한때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게임이 됐다고 적었습니다.
심시티 자신도 이어졌습니다. 심시티 2000, 3000, 4로 이어지며 높이와 지하, 지역 단위 운영이 더해졌고, 슈퍼 패미컴판의 아이디어 일부는 심시티 2000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회사들도 도시 건설 게임을 만들었고, 더 스트롱은 ‘커맨드 앤 컨커’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같은 실시간 전략 게임과도 이어진다고 봤습니다. 지금의 ‘시티즈: 스카이라인’ 같은 게임도 같은 갈래에 있습니다.

왜 살아남았나: 정답 대신 질문을 준 설계
심시티가 30년 넘게 이어진 비결은 게임이 답을 주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땅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공원이 많은 조용한 도시를, 어떤 사람은 공장이 빽빽한 부자 도시를 만듭니다. 목표를 스스로 정하니 실패도 내 기준으로 고쳐 갈 수 있습니다. 끝이 없다는 약점이 오래 붙들게 하는 힘이 된 셈입니다.
또 하나는 ‘시간차’입니다. 세금을 올리면 바로 돈이 들어오지만 몇 달 뒤 시민이 떠나고, 도로를 넓히면 그 길을 따라 새 동네가 생깁니다. 내가 한 일의 결과가 한참 뒤에 다른 곳에서 나타납니다. 도시를 수식으로 본 포레스터의 생각이 게임 속 규칙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조심할 점도 있습니다. 더 스트롱은 플레이어가 신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 실제 도시 계획에서 사람들이 겪는 일, 예를 들어 살던 곳에서 밀려나는 일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도 함께 적었습니다. 게임 속 시민은 숫자로만 보인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 심시티가 처음 정식으로 들어온 해와 당시 판매 기록은 이번에 두 곳 이상에서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한 줄
심시티는 헬리콥터 게임의 지도 편집기에서 시작해 ‘이기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라는 새 갈래를 열었습니다. 정답이 없는 판에서는 목표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 가장 오래 버팁니다. 일도 생활도 누가 엔딩을 정해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심시티처럼 ‘나는 어떤 도시를 원하나’부터 정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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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문 위키백과, SimCity (1989 video game): 1989년 2월 출시와 기종, 1985년 코모도어 64 첫 판, 레이드 온 벙글링 베이 지도 편집기, 포레스터 ‘도시 동역학’(1969), 렘 ‘일곱 번째 여행’, 브로더번드 거절과 맥시스, 1992년 말 약 100만 장, 심즈·심시티 2000
https://en.wikipedia.org/wiki/SimCity_(1989_video_game)
- 미국 더 스트롱 놀이박물관, 세계 비디오게임 명예의 전당 2024년 헌액: 레이드 온 벙글링 베이(1984) 지도 편집기, 목표 없는 설계와 ‘장난감’, 포레스터와 생명 게임, 1989년 올해의 게임·1991년 최다 판매, 이어진 심 시리즈와 도시 건설·전략 게임, 신의 시점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