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오락실에서 동전 하나로 1P 버튼만 누르던 아이가 몇 주 만에 100번째 판을 깼다면 어떤 화면을 만났을까요. 화면에 뜨는 건 축하 장면이 아니라 짧은 한마디예요. 친구와 함께 여기로 오라는 말입니다. 1986년 일본 타이토가 만든 보글보글 게임(해외 이름 버블 보블)은 정말로 이렇게 끝납니다.
혼자 끝까지 간 사람에게 '진짜 끝'을 보여 주지 않는 게임. 이 이상한 규칙이 어디서 왔고, 지금 게임에는 어떻게 남았는지 따라가 봤습니다.

보글보글 게임이 처음 한 것, 둘이어야 열리는 엔딩
미국 잡지 멘탈 플로스의 정리에 따르면 보글보글은 100개의 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혼자 100판을 다 깨면 게임은 "친구와 함께 오라"는 메시지를 보여 줘요. 두 사람이 함께 깨야 주인공 형제가 사람으로 돌아와 여자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행복한 결말이 나옵니다.
영국 게임 매체 덴 오브 기크의 2018년 글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결말을 보려면 친구와 함께 게임을 끝내야 하고, 진짜 결말은 더 빠르고 어려운 '슈퍼 모드'를 한 번 더 깨야 열린다는 거예요. 한 바퀴를 돌면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두 바퀴를 돌아야 이야기가 완성되는 구조입니다.

보글보글 게임은 어디서 왔나, 오락실에 없던 손님
이 규칙의 출발점은 게임 밖에 있었습니다. 보글보글을 만든 미쓰지 후키오는 멘탈 플로스가 옮긴 인터뷰에서 "그때 일본 오락실에서는 여성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커플을 더 오게 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귀여운 공룡 두 마리를 주인공으로 세웠고, 둘이 함께할 때 가장 좋은 보상을 받게 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거품과 과일, 동글동글한 적들도 같은 계산에서 나온 선택이었어요. 오락실에 없던 손님을 데려오는 것이 게임 디자인의 첫 목표였던 셈입니다.
뿌리도 하나 있습니다. 멘탈 플로스는 1983년 타이토의 다른 게임 '챠크 앤 팝'을 보글보글의 앞선 작품으로 꼽아요. 보글보글의 적 캐릭터가 이 게임에서 처음 나왔고, 보글보글 안에도 이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판이 두 곳 들어 있다고 합니다.
보글보글 게임을 이어받은 게임들
보글보글은 한 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멘탈 플로스와 덴 오브 기크는 함께 '레인보우 아일랜드', '파라솔 스타즈', '버블 심포니'를 이어진 작품으로 꼽아요. 두 사람이 함께하는 방식도 여러 작품에서 이어졌습니다. 오락실을 떠나 ZX 스펙트럼, 아미가, 패미컴(NES), 세가 마스터 시스템, 게임보이로도 옮겨졌고요.
지금도 이 게임은 살아 있습니다. 타이토는 2021년 9월 30일 스팀에 '버블 보블 4 프렌즈: 더 배런 이즈 백'을 냈는데, 상점 소개에 따르면 1986년 오락실판을 그대로 되살린 모드가 들어 있어요. 제목에는 아예 '4 프렌즈'를 달았어요. 두 명에서 네 명으로, 함께하는 사람 수를 앞세운 셈입니다.

요즘에는 처음부터 둘이 아니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게임도 나옵니다. 2021년 '잇 테이크 투'가 대표적이에요. 다만 이 게임이 보글보글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지 못해, 여기서는 '닮았다'고만 적겠습니다.
보글보글이 우리나라 오락실에 처음 들어온 해, '보글보글'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누가 붙였는지는 서로 다른 두 출처로 확인하지 못해 뺐습니다.
보글보글 게임이 살아남은 이유, 보상을 '함께'에 걸었다
보통 게임은 혼자 잘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보상을 줍니다. 보글보글은 거꾸로 했어요. 혼자서도 100판까지는 갈 수 있게 길을 열어 두고, 마지막 문 하나만 둘이서 열게 했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결국 친구 손을 잡고 오락실에 다시 와야 했던 이유예요.
제 해석으로는 이 설계의 핵심이 '벌'이 아니라 '초대'에 있습니다. 혼자 하는 사람을 막지 않고, 다만 가장 좋은 것을 함께에 걸어 두었어요. 그래서 1P 버튼만 누르던 사람도 옆자리 2P를 비워 두지 않게 됩니다.
혼자 가는 길은 막지 않되, 가장 좋은 보상 하나를 함께해야만 얻게 걸어 두면 사람들은 스스로 동료를 데려옵니다.

이 생각은 오락실 밖에서도 쓸 데가 있습니다. 동호회 회원 모집이든 가족 운동 계획이든, 혼자 하는 사람에게 손해를 주기보다 둘이 할 때만 열리는 작은 보상 하나를 만들어 두는 쪽이 사람을 모으는 데 더 잘 통하지 않을까 싶어요.
보글보글 게임, 한 줄
혼자 끝낸 사람에게 '친구와 다시 오라'고 말한 게임은 경쟁 대신 초대를 설계했고, 그 덕에 40년이 지나도 2P 버튼 옆자리를 남겨 두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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