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뒤에 찾아온 폭우. 이런 날이야말로 이자카야를 즐기기에 완벽한 날씨입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따뜻한 사케와 섬세한 요리, 이 조합을 위해 인덕원의 '무스비'를 찾았습니다. 본점의 에어컨 고장이라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오히려 비 오는 날의 정취와 더 잘 어울리는 2호점에서 완벽한 코스 요리를 경험했죠. 궂은 날씨의 수고로움을 단번에 잊게 만든 '무스비'의 디너 코스, 그 매력 속에서 아직도 못 나오고 있는 이야기 들어 보시정
궂은 비를 뚫고 온 우리를 반겨주듯, 따뜻한 온기가 담긴 '초당 옥수수 스프'가 첫 주자로 등장했습니다.
한 숟가락 입에 넣는 순간,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설탕을 넣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달콤하고 농후한 옥수수의 맛은, 마치 싱그러운 여름의 정수만을 진하게 농축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눅눅했던 마음을 보송하게 만들어주는 다정한 위로 같았던 이 스프 덕분에, 이어질 요리들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잊지 못할 제철 소라와 갈치젓
달콤한 옥수수 스프가 남긴 기분 좋은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궂은 비에 움츠러든 몸을 녹여주려는 듯, '제철 소라'였죠. 젓가락으로 집어드니 은은한 불향이 코끝을 스치며 기분 좋게 했습니다.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깃한 소라 한 점을 그냥 먹어도 훌륭했지만, 이 요리의 진짜 매력은 곁들여진 '갈치젓'에 있었습니다. 매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내는 갈치젓을 살짝 올려 함께 맛보니, 담백했던 소라의 맛에 강렬하고 즐거운 파도가 치는 듯했습니다.
따뜻한 소라의 부드러움과 불향, 그리고 매콤한 갈치젓의 짜릿한 조화. 빗소리를 들으며 맛보는 이 완벽한 조합은,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마음을 더욱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참다랑어 타다끼'가 등장
강렬했던 소라의 여운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던 순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참다랑어 타다끼'가 등장했습니다. 붉은 보석처럼 빛나는 참치 위로 하얀 양파와 초록빛 바질 페스토가 소복이 쌓인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죠.
겉면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불향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참치의 부드러운 속살. 이 상반된 매력 위로 상큼한 유자 폰즈 소스가 쏟아지며 입안을 개운하게 정돈해 주었습니다. 아삭한 양파의 식감과 고소한 깨의 맛은 물론, 여기에 화룡점정은 바로 '바질 페스토'였습니다.
동서양의 만남이 이토록 황홀할 수 있다니. 향긋한 바질의 향이 유자 폰즈와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맛의 조화는, 잠시 비가 오는 것도 잊게 할 만큼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앞선 요리의 강렬함을 산뜻하게 씻어내고, 다음을 위한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기분 좋은 쉼표 같은 요리였습니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담아낸 '가지 튀김과 닭고기 표고 미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아!' 하는 낮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뜨거운 기름에 한 번 튀겨낸 가지는 겉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속은 마치 크림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렸습니다. 가지라는 채소가 이토록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어요.
그 위를 덮은 짭짤한 닭고기 표고 미소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잘게 다진 닭고기와 향긋한 표고버섯, 아삭한 우엉이 어우러진 된장 소스는, 부드러운 가지와 만나 입안을 풍성하고 든든한 감칠맛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단순한 튀김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맛본 이 따뜻하고 다정한 맛은, 그 어떤 화려한 요리보다도 깊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은 맛이었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전복찜'이었죠.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부터 진한 바다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마치 우리 두 사람을 궂은 비가 내리는 바닷가로 순간 이동시킨 것 같았습니다.
은은한 불맛을 입은 전복은, 입안에서 춤을 추듯 쫀쫀하고 탄력 있는 식감을 자랑했습니다. 한 점 한 점 사라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바다의 모든 생명력을 응축해 놓은 듯한 맛이었죠.
하지만 이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였습니다. 전복을 다 먹고 난 뒤, 고소한 내장 소스에 남은 맨초밥을 쓱쓱 비벼 먹는 순간. 입안 가득 다시 한번 휘몰아치는 진한 바다의 향!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깊고 진한 녹색의 감칠맛은 그야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전복의 살과 내장, 밥 한 톨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내지 않은, 바다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요리였습니다. 빗소리와 함께, 우리 기억 속에 오랫동안 파도칠 것 같은 깊은 맛이었습니다.
참나물을 곁들인 청어
칼집을 곱게 낸 청어는 보기에도 아름다웠지만, 그 맛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하고 기름진풍미, 그러면서도 무르지 않고 탄탄하게 씹히는 부드러운 살결. 청어라는 생선이 가진 매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이 기름진 맛을 완벽하게 잡아주는 것이 바로 참나물이었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참나물특유의 상쾌한 향과 짭조름한 양념, 고소한 들기름의 향연은 청어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기름진 생선과 향긋한 나물의 만남이 이토록 완벽할 수 있다니, 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바다의 풍요로움과 땅의 싱그러움이 한 접시 안에서 어우러지는 기분. 궂은 날씨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마치 이 요리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콤한 새우와 샐러리악 퓨레, 그리고 폰즈 쥬레의 섬세한 만남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녹진한 단새우의 맛은 물론, 함께 나온 샐러리악 퓨레는 너무 부드러운 우유 푸딩처럼 혀를 감싸며 다정한 맛을 냈습니다.
여기에 반짝이는 폰즈 쥬레(젤리)를 함께 곁들이니, 상큼한 맛이 톡 터지며 전체적인 맛을 경쾌하게 이끌어주었습니다. 달콤함, 부드러움, 상큼함. 이 세 가지가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순간은, 마치 비가 그치고 해가 살짝 내비치는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주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각 재료가 가진 섬세한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셰프의 다정함이 느껴지는 요리였습니다. 빗소리마저 감미로운 배경음악이 되는, 우리 둘만의 아늑한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맛이었습니다.
3가지 오일로 채워진 잿방어 말이
잿방어 한 점을 들어 올리니, 안에 품고 있던 명이(나물)의 향이 확 퍼지며 먼저 코를 즐겁게 했습니다. 잿방어의 탄탄한 식감은 말할 것도 없었죠. 그리고 접시에 담긴 3가지 오일 - 달콤 쌉쌀한 흙마늘 오일과 향긋한 마늘 오일, 싱그러운 그린 오일을 차례로 맛보는 재미는 이 요리의 백미였습니다.
향기로운 오일에 푹 적신 잿방어 롤과, 그 위를 장식한 딜의 화사한 향까지. 이 모든 것이 한입에 어우러지는 순간, 익숙한 듯 전혀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안 매운 감바스 같기도 했습니다.
참치 1번 뱃살 타다끼
보석 같은 '참치 1번 뱃살 타다끼'가 고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겉면만 살짝 그을려 탄탄하게 가둔 감칠맛과 선명한 붉은 속살의 대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같았죠.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강렬한 불향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뒤이어 혀에 닿은 참치 뱃살은 저항 한번 없이 사르르 녹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소함과 부드러움을 응축한 듯한 이 황홀경에, 톡 쏘는 홀그레인 머스타드의 악센트가 더해지니 정신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습니다. 기름진 맛의 절정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 같았달까요.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오리요리!
오리 특유의 섬세함이나 가벼운 풍미 대신, 잘 숙성된 소고기 안심에서나 느낄 법한 묵직하고 응축된 육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러한 변신을 더욱 완전하게 만든 것은 접시 위 다채로운 조력자들이었죠. 태양빛을 농축한 듯한 당근 콩 미소된장 퓨레는 달콤하고 구수한 감칠맛으로 안정감을 더했고, 진한 레드와인 복분자 갈색 소스는 잘 만든 스테이크 소스처럼 새콤달콤한 화려함으로 풍미를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생선 가마 버섯 국
화려했던 맛의 향연이 끝나고,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소박하지만 깊은 정성이 담긴 요리가 따뜻한 김을 피워 올리며 등장했습니다. 뽀얀 국물은 마치 오랜 시간 푹 고아낸 사골국물처럼 진하고 깊은 아우라를 풍겼죠.
하지만 이 깊은 맛의 정체는 소의 뼈가 아닌, 기름지고 녹진한 생선 가마를 우려낸 육수였습니다. 여기에 감칠맛의 대명사인 가쓰오브시와 일본 다시마가 더해져, 생선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묵직하고 탄탄한 맛의 골격을 세웠습니다.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니, 쌀알 사이로 향긋한 미나리 향이 번지고 버섯의 부드러운 식감이 기분 좋게 느껴졌습니다. 위장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다정한 온기는, 지금까지의 화려했던 모든 맛을 차분하게 정리해


주는 듯했습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진실한 맛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완벽한 마침표와 같은 요리였습니다.
디저트는 두부 티라미수!
모든 맛의 여정이 끝나고,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은 듯한 디저트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곱게 내린 콩가루가 소복이 쌓인 모습은 마치 잘 가꾸어진 모래 정원 같기도, 이른 아침 서리가 내린 밭 같기도 하여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억하고 보니, 이런 예술적인 감각의 플레이팅을 좋아하신다고 했던 게 떠오르네요.
이 정갈한 풍경의 주인공은 바로 두부 티라미수. 이탈리아의 열정과 한국의 담백함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세계의 만남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자, 티라미수 특유의 진한 치즈 풍미 대신 두부의 고소하고도 슴슴한 매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 위로 볶은 콩가루의 구수함이 덧입혀지고, 작게 흩뿌려진 크런치가 즐거운 식감을 더했죠. 예상치 못한 푸릇한 딜(dill) 허브의 향긋함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맛에 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달콤함으로 혀를 지배하는 대신 속을 편안하게 다독여주는 다정한 디저트. 자극적인 단맛이 아닌 재료 본연의 맛으로 꽉 채운 이 담백한 마무리는, 긴 식사의 여운을 묵직한 포만감이 아닌 맑고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게 했습니다.

마무리
이처럼 한 편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듯한 코스. 계절의 변화와 셰프의 영감이 접시 위에 고스란히 펼쳐지는 이 모든 놀라운 경험이 인당 39,000원이라는 가격에 담겨 있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에 또 다른 즐거운 반전을 선사합니다.
심지어 이 섬세한 이야기는 2주에 한 번, 혹은 매주 새롭게 쓰인다고 하니, 다음 방문은 또 어떤 설렘으로 가득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다만 이 멋진 여정에는 1인 1잔 이상의 주류 주문이 필수이기에, 음식의 풍미를 온전히 돋워 줄 술 한 잔과 함께하기 위해 차는 잠시 두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따로 마련된 주차 공간이 없어) 가벼운 발걸음이 이 미식 탐험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가게를 나설 때, 우리를 맞이했던 궂은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습니다. 마치 이 황홀했던 미식의 여정이 끝남과 동시에, 세상도 다시 맑게 갠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단순한 식사를 넘어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온 듯한, 깊고 충만한 밤이었습니다.
인덕원 무스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인덕원로12 1층 103호
✔️ 영업시간
18:00 - 01:00
일요일 휴무
✔️ 전화
0507-142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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