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지구 평평설'을 주장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과학적 용어를 뒤섞어 가며 진지하게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는 모습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왜 저토록 굳게 믿는 걸까? 그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과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사람들과 똑같은 게 아닐까?' 이 작은 의문은 저를 '다수의 믿음'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천동설과 지구 평평설: 시대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과거 중세 유럽에서 천동설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학적 권위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결합된 강력한 패러다임이자 '상식'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부터 어른, 지식인부터 성직자까지 모두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고, 밤하늘의 모든 존재가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에서 인간 존재의 특별함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다수가 공유하는 이 믿음은 사회적 안정감과 세계관의 근간을 이루었고, 그렇기에 더욱 견고했습니다. 이 거대한 믿음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단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습니다.
현대의 지구 평평설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속삭이고, 주변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영상들이 그 믿음을 강화해 준다면,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됩니다. "하늘이 어디 둥글게 휘는 게 보이기라도 해?"라는 그들의 질문은, 외부와 차단된 그들의 관점에서는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두 사례는 인간이 '직관', '사회적 동의', 그리고 '소속감' 앞에서 얼마나 쉽게 객관적 진실을 외면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2. “다수가 옳다”는 착각: 알고리즘 시대의 집단 사고
이러한 심리는 오늘날 더욱 교묘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믿음을 확인해 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기 쉽습니다.
- 유튜브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 자극적인 콘텐츠
-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뉴스 기사들
- 주식 시장에서 특정 종목을 향한 긍정적 여론과 군중심리
특히 개인화 알고리즘은 이 편향을 극대화하여 우리를 '정보의 메아리 방(echo chamber)' 안에 가둡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만 끝없이 증폭되고, 다른 의견은 아예 접할 기회조차 차단당합니다. 결국 우리는 내가 보는 것이 곧 세상의 전부이자 다수의 의견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동조 효과(conformity)’ 혹은 **‘집단 사고(groupthink)’**라고 부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불안감을 느낄수록,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는 고통을 피하고 다수의 믿음에 기대어 안정감을 찾으려 합니다.
3. 역사는 소수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역사는 중요한 진실 대부분이 처음에는 비웃음과 핍박을 받던 소수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끊임없이 증명합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세상은 그를 종교재판에 세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진실을 향한 그의 외침은 거대한 권위와 다수의 믿음 앞에서 힘없이 꺾이는 듯 보였습니다. 의사들이 시체를 만진 손을 씻지 않고 산모를 진료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시절, '손 씻기'라는 간단한 해법을 주장한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에게 미치광이 취급을 받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외로운 외침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노예 해방, 여성 참정권, 기후 변화의 심각성 등,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과거에는 소수의 불편한 외침이었습니다.
맺으며: 나의 믿음은 '진실'인가, '안심'인가
유튜브에서 시작된 작은 호기심은 제게 무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직접 확인하고 검증한 진실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이 믿기 때문에 그저 안심하고 따라가는 믿음일 뿐일까?
천동설도, 지구 평평설도 ‘많은 사람이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긴 시간 살아남았지만, 결국 진실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다수의 믿음은 진실의 '방향'을 가리키기보다, 그저 그 시대의 생각에 '무게'를 더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각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글을 일부러 찾아 읽고, 내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질문하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길러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새로운 천동설이 떠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을 간파하는 힘은, 다수를 향한 순응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끈질긴 의심과 소수의 목소리를 듣는 열린 귀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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