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터넷에서 논쟁을 지켜보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A를 말했는데, 어느새 상대방은 B를 이야기하며 저를 공격하고 있더군요.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만들어놓고, "이게 문제다!"라고 소리치는 상황. 이런 답답함을 저만 느낀 건 아닐 겁니다.
특히 요즘 댓글 문화를 보면 "왜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반응할까?"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유를 너무 알고 싶어 찾아보다가, 저는 '허수아비의 오류(Strawman Fallacy)'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의 주장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약한 허수아비로 만들어 쓰러뜨린 뒤, 마치 논쟁에서 이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논리적 함정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 분노를 먹고 자라는 허수아비의 힘
허수아비 오류가 왜 그렇게 강력할까요? 바로 사람들의 '감정'을 정통으로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논리나 팩트 체크보다 단순한 분노, 공포, 혐오 같은 감정은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퍼져나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이 정책은 부작용이 우려되니 신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 댓글창에는 곧바로 "나라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합리적인 문제 제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원색적인 분노의 목소리만 남게 되죠. 짧은 시간 안에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소셜 미디어나 댓글창에서 이 방식이 유독 잘 통하는 이유입니다.
📜 역사: 거대한 허수아비의 무대
놀랍게도 이런 비열한 전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니 굵직한 사건들마다 어김없이 허수아비가 등장하더군요.
- 🐶 1. 닉슨과 강아지 체커스 (1952년): 부통령 후보였던 닉슨이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의혹에 휩싸이자, 그는 TV 연설에서 "다른 건 다 돌려줘도, 딸들이 선물 받은 강아지 '체커스'만은 돌려줄 수 없다"라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대중의 비판은 '정치 자금'이라는 본질을 향해 있었지만, 닉슨은 '순수한 강아지를 뺏으려는 냉혈한'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 비판의 초점을 흐렸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그는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 🧬 2. 진화론과 원숭이: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었을 때, 반대자들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말이냐!"라며 대중을 선동했습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점진적 분화'인데, 이를 우스꽝스러운 주장으로 왜곡해 공격한 것입니다. 이 허수아비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 🟥 3. 냉전과 매카시즘: 냉전 시대 미국에서는 사회 복지 확대, 노동권 보장 같은 온건한 주장조차 "공산주의자의 선동"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정책의 장단점을 따지기보다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허수아비를 세워 반대자를 '빨갱이'로 몰아 마녀사냥을 벌였죠.
💬 우리 댓글 문화, 허수아비의 놀이터가 된 이유
그리고 제가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바로 우리나라의 댓글 문화입니다. 익명성과 짧은 호흡, 감정적 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좋아요')이 맞물리면서 이곳은 허수아비 오류가 가장 쉽게 자라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 정치: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 → "나라 거덜 낼 사회주의자냐?"
- 연예인: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을 줄이자" → "그럼 넌 평생 비행기 타지 마라!"
- 젠더 갈등: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불안 해소가 필요하다" →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거냐?"
원래의 주장이 담고 있던 맥락과 취지는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왜곡된 허수아비만 남아 서로를 향한 공격과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제가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던 극단적인 대립의 배경에는 바로 이 허수아비가 있었습니다.
🧠 허수아비를 이기는 법
허수아비의 오류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의도된 전략'일 수 있습니다. 역사 속 권력자들부터 오늘날 댓글창의 익명 누리꾼까지, 이 전략의 효과는 너무나 뚜렷합니다.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부터 다짐해 봅니다.
- 진짜 주장 확인하기: 누군가 흥분해서 상대를 비난할 때, "저 사람이 정말 그렇게 말했나?" 원문을 먼저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려 합니다.
- 감정에 브레이크 걸기: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잠시 멈추고 생각해 봅니다. '혹시 내 분노를 자극하려는 허수아비는 아닐까?'
- 나부터 돌아보기: 저 역시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상대의 말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며 공격한 적은 없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이를 인지하고 조심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마치며
제가 처음 답답함을 느꼈던 댓글 문화 속의 비이성적인 대립. 왜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왜곡하며 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의 오류'를 알고 나니 그 메커니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허수아비는 대화를 망치고, 이성을 마비시키며,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대립으로 몰아넣는 교묘한 함정입니다. 다음에 또다시 누군가 다른 사람의 말을 물어뜯으며 공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한 번쯤 이렇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그거, 정말 그 사람이 한 말 맞아?"
이 작은 질문 하나가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더 건강하고 진실한 대화를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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