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바다에서 가장 크게 웃은 한국 기업

2026년 3월, 전 세계가 호르무즈 해협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전 세계 원유의 약 25%가 통과하던 바닷길이 사실상 막혀 버렸죠. 하루 50척이 오가던 유조선 통행량은 0~1척으로 급감했고, WTI 유가는 봉쇄 9일 만에 111달러를 넘기며 공포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블룸버그 통신 1면을 장식했습니다. 바로 한국의 중견 해운사 장금상선(영문명 시노코, Sinokor)입니다. 대중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 회사가 지금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일은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더라고요.
장금상선은 전쟁이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초대형 유조선(VLCC)을 대거 사들이며 약 150척의 슈퍼탱커 선단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올해 1월 말, 빈 유조선 6척을 페르시아만으로 미리 보내 대기시켰는데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원유를 저장할 곳이 없어진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장금상선의 유조선을 찾기 시작하면서, 하루 임대료가 약 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억 500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평균 대비 무려 10배나 뛴 수치죠.
재계 순위 32위, 자산총액 19조 원이 넘지만 B2B 사업 특성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 회사가 어떻게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됐을까요? 그 이면에는 치밀한 전략, 과감한 베팅,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경영 DNA가 있었습니다.
1. 장금상선 유조선 전략: '바다 위 창고'로 하루 7억을 번다

장금상선의 수익 모델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금 중동 바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한 원유는 갈 곳을 잃었습니다. 육상 저장 시설은 순식간에 포화 상태가 됐고, 석유회사들은 원유를 보관할 공간을 찾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죠. 이때 장금상선의 초대형 유조선들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겁니다.
VLCC는 한 번에 약 2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거대한 선박입니다. 장금상선은 이 유조선들을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바다 위의 거대한 저장소'로 활용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원유를 배에 실은 채 바다 위에 보관하는 방식이죠. 공급보다 수요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주도권은 완전히 장금상선으로 넘어갔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놀랍습니다. 장금상선은 올해 초 VLCC 한 척을 약 8800만 달러(약 1,170억 원)에 매입했는데, 현재의 하루 50만 달러 용선료가 유지되면 불과 6개월 만에 선박 매입 비용 전액을 회수할 수 있는 계산이 나옵니다. 원유 운송 비용도 배럴당 약 20달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건 지난해 평균 2.5달러의 8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장금상선 호르무즈 사태가 만들어낸 전례 없는 수익 구조인 셈이에요.
현재 장금상선이 통제하는 슈퍼탱커는 약 150척으로, 전 세계 즉시 투입 가능한 유조선 물량의 약 40%에 해당합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호르무즈 해협에 단일 해운사로는 가장 많은 6척의 유조선을 보유한 장금상선이 전례 없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 정태순 회장과 정가현 이사: 아버지의 배짱, 아들의 실행력

이 과감한 베팅 뒤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장금상선 창업주 정태순 회장과 그의 장남 정가현 시노코페트로케미컬 이사입니다.
정태순 회장은 1948년 경남 거창 출신으로,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9년 홍콩에서 장금유한공사를 설립하며 해운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회사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데요, 장금상선의 '장금'은 중국의 장강과 한국의 금수강산에서 따왔고, 영문명 시노코(Sinokor)는 중국(Sino)과 한국(Kor)의 합성어입니다. 한중 수교 이전부터 양국 간 해상 물류의 다리를 놓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었던 거죠.
2000년대 초 평택항에 한중 컨테이너 노선을 최초로 취항시켰을 때 월 수십억 원의 적자로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고 부산항, 광양항, 울산항 터미널까지 잇달아 인수하며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시켰죠.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DNA가 이번에도 발휘된 셈입니다.
이번 유조선 대량 매입의 실무를 이끈 건 아들 정가현 이사입니다. 업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왓츠앱을 통해 전 세계 선주들과 직접 협상하며 핵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사업 파트너나 직원들과 수시로 팔씨름을 즐기며 유대감을 쌓는 독특한 경영 스타일도 화제가 됐는데요. 이런 야성적인 에너지가 전쟁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과감한 투자를 끌어냈다는 평가입니다.
장금상선은 2025년 말경 약 30억 달러(약 4조 3,000억 원)를 투입해 중고 VLCC 35척을 매입했고, 추가 임차를 통해 선단 규모를 급속히 확대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당시 이를 두고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베팅은 역사적인 대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VLCC 선주 순위가 세계 12위에서 상위 3위권으로 급상승했으니까요. 장금상선 호르무즈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해운 업계에 기록될 전망입니다.
3.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해운주 투자 전망과 시사점

장금상선 자체는 비상장기업이라 일반 투자자가 직접 주식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회사인 흥아해운(003280)이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죠. 흥아해운은 액체 석유화학 제품을 운송하는 탱커선이 주력인데, 장금상선이 글로벌 유조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식에 3월 16일 상한가(+29.98%)를 기록했습니다. 개장하자마자 상한가에 도달해 일반 투자자들은 진입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하네요.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장금상선 한 회사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 해운 운임 전반이 50~8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전쟁이 끝나더라도 물류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조선을 보유한 해운사들의 독점적 지위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69.1%에 달하고, 그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합니다. 이번 위기는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던지고 있어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호르무즈를 경유하지 않는 대체 공급선 확보를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죠.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지정학적 리스크가 특정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준비된 기업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 둘째, 유조선·벌크선 등 해운 관련 종목들의 운임 상승 수혜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 셋째,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관련된 인프라 투자 테마도 주목할 만하다는 점입니다.
다만 전쟁 수혜주라는 특성상 변동성이 극도로 크고, 휴전이나 봉쇄 해제 시 급락 가능성도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무리: 위기의 바다에서 읽는 기회의 신호

폭 33km의 좁은 바닷길 하나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그 혼란 속에서 한국의 한 해운사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떠올랐습니다. 장금상선 호르무즈 사태에서 보여준 전략은 단순한 운이 아니었습니다. 수년간의 데이터 분석, 시장 흐름에 대한 감각, 그리고 남들이 주저할 때 과감하게 움직이는 결단력이 만들어낸 결과죠.
물론 전쟁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마냥 축하할 일만은 아닙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민간 선박들이 피격되고 있고, 선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위기에 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
당신은 지금 어떤 위기를 기회로 준비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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