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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탐구/알면 좋은 브리핑

2025년 장마, 작년과 어떻게 다를까?, 호우경보급 물폭탄, AI, 슈퍼컴퓨터를 넘어 날씨 예측의 새 시대를 열다

by scriptpond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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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가 아닌 '중계'가 된 기상청, 기후 위기 속 낯설어진 2025년 장마를 맞이하며

언제부턴가 일기예보를 기다리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내일의 날씨를 미리 본다’는 설렘 대신,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뒤늦게 울리는 재난 문자를 확인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현재 강수량’ 정보는 예보(豫報)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한 중계(中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죠. 기상청은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날씨는 그들의 예측을 교묘하게 비껴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런 답답함의 근원에는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현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현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할 2025년의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장마와도 또 다른 양상. ‘장마는 으레 이렇지’ 하고 넘겼던 제 경험칙은 이제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랩니다.

이처럼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일까요? 역설적이게도, 이 혼돈 속에서 인류는 새로운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기후 위기가 던진 숙제를, 인류의 가장 진보한 기술이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낯설어진 장마를 맞아 그 깊은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2025년의 장마, 기억 속 그 장마가 아니다

2025년의 장마, 기억 속 그 장마가 아니다

올해 우리가 마주할 장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위협적인 데이터로 예고되었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불안감이 아닌, 수치로 증명된 현실입니다.

  • 정확히 예고된 시작, 그리고 한 달간의 대장정: 예측된 일정은 놀라울 만큼 현실과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제주(6월 19일)와 남부지방(6월 23일)에 이어, 바로 오늘(6월 25일) 중부지방에서도 장마가 시작되며 앞으로 약 한 달간 길고 험난한 시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평년을 압도하는 강수량: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평년 대비 1.5배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기록적인 강수량입니다. 특히 서울 지역은 평년의 120%, 제주는 130% 수준의 비가 예고되는 등, 단순한 변덕이 아닌 명백한 기후 변화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습니다.
  • ‘짧고 굵은’ 국지성 집중호우의 일상화: 올해 장마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국지성 집중호우’입니다.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거나, 심지어 하루 100mm 이상의 강수 확률이 70%에 달할 수 있다는 예측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비가 오지 않는 ‘마른장마’ 기간 뒤, 대기 중 에너지가 한꺼번에 특정 지역에 쏟아지는 ‘물폭탄’ 패턴이 반복될 것입니다. 이는 서울 도림천, 신림동 같은 반지하 밀집 지역이나 경기도 파주, 전북 군산 등 상습 침수 지역에 직접적인 재해 위험이 크게 증가했음을 의미합니다.
  • 과학적 배경, 강화된 북태평양 고기압과 태풍의 위협: 이러한 현상은 열대 서태평양의 고수온 현상으로 인해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온다습한 공기가 대량으로 유입되며 장마전선을 폭발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장마 후반부는 제1호 태풍 '우딥(Omais)'의 발생 시기와 겹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태풍이 몰고 온 막대한 수증기가 장마전선과 만나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와 데이터들은 단순히 건조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의 출퇴근길, 주말 계획, 그리고 생명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명백한 경고입니다.

왜 우리의 예보는 ‘중계’처럼 느껴졌을까: 슈퍼컴퓨터의 명백한 한계

우리가 느끼는 예보와 현실의 괴리감은 ‘수치예보모델(NWP)’이라는 전통적 예측 방식의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지구를 잘게 쪼갠 격자마다 물리방정식을 대입해 슈퍼컴퓨터가 미래를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지난 수십 년간 날씨 예측의 근간이었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는 몇 가지 약점을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 연산 시간의 한계: 대기는 실시간으로 변하지만, 슈퍼컴퓨터가 복잡한 연산을 마치고 예보를 내놓기까지는 수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차 때문에 예보는 현실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늦은 중계’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 혼돈을 증폭시키는 기후 변화: 대기의 작은 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는 ‘나비 효과’는 기후가 불안정해질수록 더욱 강력해집니다. 예측 모델에 입력하는 초기 조건의 미세한 오차가 과거보다 훨씬 더 큰 오차로 증폭되어, 예측의 정확도를 떨어뜨립니다. 슈퍼컴퓨터가 아무리 빨라져도 이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AI, 새로운 ‘예보’의 가능성을 제시하다

AI 슈퍼컴퓨터를 넘어 날씨 예측

AI는 이 문제에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합니다. 물리방정식을 푸는 대신, 방대한 과거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학습해 미래를 추론합니다.

  • 패러다임의 전환 (Simulation → Inference): AI 모델은 유럽중기예보센터의 ‘ERA5’와 같은 수십 년 치의 고품질 기상 데이터를 학습합니다. 특정 위성 이미지와 기압 배치 다음에 어떤 날씨가 나타났는지를 수억, 수십억 번 반복 학습하여 날씨의 법칙을 스스로 터득합니다.
  • 압도적인 속도와 해상도: 구글 딥마인드의 ‘그래프캐스트(GraphCast)’나 화웨이의 ‘판구-웨더(Pangu-Weather)’ 같은 최신 AI 모델들은 슈퍼컴퓨터가 수 시간 걸릴 연산을 단 몇 분 만에 해냅니다. 이는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예측을 가능하게 하며, 특히 기존 모델이 놓치기 쉬웠던 국지적인 돌풍이나 소규모 비구름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입니다.
  • ‘확률’을 예보하다: 앙상블 예측의 진화: AI의 진정한 힘은 수천 개의 가능한 미래 시나리오, 즉 ‘앙상블’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이는 ‘비가 옵니다’라는 단답형 예보를 넘어, ‘한 시간 뒤 당신의 위치에 50mm 이상 폭우가 쏟아질 확률이 92%입니다’와 같이 정량화된 확률 정보를 제공합니다. 불확실성 자체를 정보로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중계’를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예보’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일상에 가져다줄 변화는 명확합니다. 창밖에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그보다 한 시간 먼저 내 스마트폰이 ‘곧 쏟아질 폭우에 대비하라’고 알려주는 경험. 외출 전, 막연히 ‘흐림’이라고 알려주는 예보 대신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 특정 지역에 소나기 확률 85%’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 것.

AI가 기후 위기 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는 기후 위기라는 ‘뉴노멀’에 우리가 현명하게 적응(adaptation) 하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대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을 피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오늘 시작된 2025년의 장마는 분명 낯설고 두려운 도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무방비 상태가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위기 앞에서, 동시에 인간의 가장 빛나는 지성이 만들어낸 기술이 새로운 눈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수동적으로 날씨 ‘중계’를 지켜보던 시대에서, 능동적으로 날씨 ‘예보’를 활용하는 시대로. 그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올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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