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오락실, 동전을 넣고 갤러그 앞에 앉으면 화면 위쪽에서 대장 적이 천천히 내려옵니다. 그러고는 아래로 부채꼴 모양의 광선을 쏘죠. 그 안에 들어가면 내 전투기가 빙글빙글 돌며 끌려 올라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당연히 피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좀 아는 사람은 거꾸로 움직입니다. 일부러 그 광선 속으로 들어갑니다.
갤러그 합체 전투기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한 대를 먼저 내줘야 두 대가 나란히 붙은 전투기를 얻습니다. 잃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 심리학에서 손실회피라고 부르는 성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규칙입니다. 이 글은 게임 공략이 아니라 그 규칙이 일과 돈, 관계에서 무엇을 알려 주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갤러그 합체, 규칙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갤러그는 일본 남코가 1981년 오락실용으로 내놓은 슈팅 게임입니다. 지금은 스팀에서 'ARCADE GAME SERIES: GALAGA'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소개문에도 1981년 오락실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게임 정보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규칙 하나입니다.
- 대장 적의 광선에 잡히면 전투기 한 대, 그러니까 목숨 하나를 잃습니다.
- 남은 전투기로, 잡아간 대장 적이 다시 내려올 때 쏘아 맞히면 잡혔던 전투기가 풀려나 내 옆에 붙습니다. 두 대가 나란히 날며 총알도 두 줄로 나갑니다.
- 대신 몸집이 두 배가 됩니다. 맞을 자리도 그만큼 넓어집니다.
- 순서를 틀리면 손해입니다. 대장 적이 대열에 가만히 있을 때 쏘아 버리면, 잡혀 있던 내 전투기가 적이 되어 나를 공격합니다.
이 규칙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개발을 이끈 요코야마 시게루가 반다이남코 공식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시제품을 만들어 보니 전작과 별로 다르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영화에서 끌어당기는 광선을 보고 '부수는 대신 붙잡아 가는 광선'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구해 낸 전투기를 남은 목숨으로 돌려주려 했다가, 옆에 붙어 함께 싸우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돌려받는 것과 두 배가 되는 것. 저는 이 차이가 갤러그를 다른 슈팅 게임과 갈라놓았다고 봅니다. 그냥 돌려받는 규칙이었다면 잡히는 건 순전한 손해였을 겁니다. 두 배가 되는 순간, 잡히는 일이 '투자'가 됩니다.

왜 대부분은 광선을 피할까요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1979년 논문에서 사람이 이익과 손실을 같은 저울로 재지 않는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같은 크기라면 얻는 기쁨보다 잃는 아픔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손실회피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오락실 의자에 앉은 사람의 마음도 같습니다. 가진 전투기 가운데 한 대를 내주는 일은 눈앞에서 확실하게 벌어지는 손실입니다. 두 배 화력은 '되찾는 데 성공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은 미래의 이익이고요. 확실한 손실과 불확실한 이익을 나란히 놓으면 사람은 대개 손실을 피하는 쪽을 고릅니다. 그래서 광선이 내려오면 반사적으로 옆으로 빠집니다.
갤러그가 영리한 대목은 여기입니다. 이 게임은 '먼저 잃어야 얻는' 길을 숨겨 두지 않고 화면 한가운데 광선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한두 번 해 보면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손으로 알게 됩니다. 손실이 무서운 까닭은 대개 그 뒤가 보이지 않아서인데, 갤러그는 그 뒤를 보여 주는 셈입니다. 여기까지는 규칙을 놓고 제가 풀어 본 해석입니다.
흔한 오해, 손해를 감수하면 보상이 온다
이 이야기를 '과감하게 내주면 더 크게 돌아온다'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갤러그의 규칙을 다시 보면 조건이 세 가지 붙어 있습니다.
첫째, 여유분이 있을 때만 통합니다. 마지막 한 대가 잡히면 되찾으러 갈 전투기가 없습니다. 게임은 거기서 끝납니다.
둘째, 되찾는 순서를 알아야 합니다. 대장 적이 내려올 때를 기다려 쏴야 하고, 성급하게 대열에 있는 놈을 쏘면 내 전투기가 적이 됩니다. 내준 것이 나를 겨누는 상황이죠.
셋째, 커진 힘은 커진 표적입니다. 두 대가 붙으면 화력은 두 배지만 피할 공간은 줄어듭니다. 합체한 뒤에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손실회피 자체에 대해서도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갤과 데릭 러커는 2018년 소비자심리학 저널에 실은 글에서, 손실이 이익보다 언제나 더 크게 다가온다는 믿음은 근거가 생각보다 약하다고 비판했습니다(초록 기준). 사람이 늘 손실을 과하게 두려워하는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원래 겁이 많으니 무조건 과감해져라'도 맞는 결론이 아닙니다.
현실이 게임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갤러그에서는 내준 전투기가 화면 위에 보이고, 되찾는 방법이 정해져 있습니다. 현실에서 내준 돈과 시간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을 때가 많고,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일과 돈, 관계에 옮겨 보면
그래도 이 규칙이 쓸모 있는 까닭은 내주기 전에 물어볼 질문 세 개를 주기 때문입니다.
일에서는 후배나 동료에게 일을 넘기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내가 하면 한 시간에 끝날 일을 가르치며 넘기면 세 시간이 걸리고 결과도 성에 안 찹니다. 당장은 한 대를 잃는 일입니다. 그런데 넘기지 않으면 나는 끝까지 혼자 총알 한 줄로 싸웁니다. 여기서 갤러그의 조건을 대 보면 됩니다. 마감 직전처럼 여유가 없을 때는 넘기지 않는다. 언제 중간 확인을 할지 순서를 정해 둔다. 일이 두 사람 몫으로 커지면 실수가 날 자리도 넓어진다는 걸 받아들인다.
돈에서는 먼저 나가는 돈이 그렇습니다. 자격증 교육비, 작은 가게의 첫 장비 값, 배우는 동안 줄어드는 수입 같은 것들입니다. 물어볼 것은 같습니다. 이 돈이 사라져도 생활이 버티는가. 그러니까 마지막 한 대가 아닌가. 그리고 이 돈을 되찾는 길이 구체적으로 보이는가. 수강료를 냈는데 그 뒤 일감을 어디서 구하는지 모른다면, 광선에 들어가 놓고 대장 적이 언제 내려오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관계에서는 먼저 양보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먼저 사과하고, 먼저 시간을 내는 일은 분명 손해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이것도 내가 지쳐 바닥났을 때 하는 양보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양보는 다릅니다. 앞의 것은 마지막 한 대를 내주는 일입니다.

내주기 전에 묻는 세 가지
- 남은 전투기가 있는가. 이걸 잃어도 다음 판을 이어 갈 수 있는가.
- 되찾는 순서를 아는가. 언제, 무엇을 하면 돌아오는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 두 배가 됐을 때 커지는 표적을 감당할 수 있는가.
셋 다 '예'라면 광선으로 들어가 볼 만합니다. 하나라도 '아니요'라면 피하는 쪽이 겁이 많은 게 아니라 계산이 맞는 겁니다.
갤러그가 40년 전 오락실에서 조용히 알려 준 것은 이것입니다. 내줄 수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고, 되찾는 사람은 순서를 아는 사람입니다.
참고한 자료
- 반다이남코 갤러그 공식 사이트, 요코야마 시게루 인터뷰 1편: 붙잡는 광선과 합체 전투기를 떠올린 과정
- 스팀 ARCADE GAME SERIES: GALAGA: 1981년 오락실 첫 등장, 2016년 스팀 발매
- 위키백과(영문) Galaga: 포획·구출·합체 규칙
- Kahneman & Tversky (1979), Prospect Theory, Econometrica 47(2): 손실회피의 출발점이 된 논문
- Gal & Rucker (2018), The Loss of Loss Aversion,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8(3): 손실회피가 늘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비판(초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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