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으면 이상하게 못 한 일만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끝낸 일이 열 개여도, 머릿속에 남는 건 미뤄 둔 전화 한 통과 답장 못 한 메일 하나예요. 이 기분을 게임 하나로 옮기면 딱 테트리스가 됩니다. 테트리스 규칙은 다 채운 줄을 지워 버리고, 메우지 못한 구멍만 화면에 남겨 두거든요.

테트리스 규칙, 채운 줄은 사라지고 구멍만 남는다
테트리스는 위에서 떨어지는 조각을 돌리고 옮겨 바닥에 쌓는 게임이에요. 가로 한 줄이 빈틈없이 채워지면 그 줄은 사라지고, 위에 있던 블록이 한 칸씩 내려옵니다. 반대로 틈을 남긴 채 쌓으면 그 구멍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아래에 깔려 있어요. 블록이 천장까지 닿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이 규칙을 가만히 보면 묘한 점이 있어요. 잘한 일은 화면에서 지워지고, 실수만 쌓여 남는다는 겁니다. 점수판 숫자는 올라가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언제나 메우지 못한 틈과 점점 높아지는 탑이에요.
떨어지는 조각을 돌려 맞추고, 가득 찬 줄은 지워 버리는 규칙. 끝낸 것을 치워 주고 남은 과제만 보여 주는 화면입니다.

테트리스는 어디서 왔나, 소련 연구소의 퍼즐 장난감
테트리스는 1984년 6월 6일, 모스크바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만들었어요(CNN 테트리스 역사 기사 기준). 그래픽 기능이 없던 연구소 컴퓨터 일렉트로니카 60을 시험하려고 만든 게임이었고, 기네스 세계기록도 같은 해와 같은 컴퓨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기네스 2015년 8월 18일 기사).
CNN에 따르면 뿌리는 펜토미노라는 오래된 퍼즐이에요. 정사각형 다섯 개를 이어 붙인 12가지 조각을 상자에 맞추는 놀이인데, 파지트노프는 조각을 정사각형 네 개짜리 7가지로 줄였습니다. 이름도 그리스어로 넷을 뜻하는 '테트라'와 그가 좋아하던 운동인 테니스를 합친 말이라고 해요.

이후 어떤 게임이 이어받았나, 게임보이에서 99명 대전까지
테트리스가 세계로 퍼진 계기는 1989년 일본에서 나온 닌텐도 게임보이였어요. 게임보이판 테트리스는 기네스 기준 3,026만 장이 팔려 게임보이 게임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고, CNN은 3,500만 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집계 시점이 달라 숫자는 다르지만, 3천만 장을 넘겼다는 점은 같아요.
그 뒤로 테트리스는 65개가 넘는 기기로 옮겨 갔고, 2019년에는 99명이 동시에 겨루는 온라인 대전판까지 나왔습니다(CNN 기준). 같은 색을 맞추면 사라지는 퍼즐 게임들, 줄을 지우면 점수가 나는 모바일 블록 게임들도 '채우면 지워진다'는 뼈대가 테트리스와 닮았어요.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확인된 건 아니어서 닮은꼴로만 적어 둡니다.

왜 살아남았나, 끝나지 않은 일이 머리에 남는 원리
심리학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말이 있어요. 1927년 무렵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이 식당 종업원이 계산 전에는 주문을 줄줄 외우다가 계산이 끝나면 금세 잊는 걸 보고, 동료 블루마 자이가르닉이 실험으로 확인한 현상입니다. 사람들에게 작은 과제를 시키고 일부를 중간에 멈추게 했더니, 끝낸 과제보다 중간에 멈춘 과제를 더 잘 기억했다는 결과예요(퍼시픽 스탠더드 2013년 9월 12일 기사).
2012년 10월 BBC 퓨처에 실린 심리학 칼럼은 테트리스가 바로 이 원리로 주의를 붙잡는다고 설명합니다. 칼럼의 표현대로 "테트리스는 끝나지 않은 과제를 계속 만들어 내며 우리의 주의를 붙든다"는 거예요. 한 줄을 지우는 순간 다음 조각이 이미 떨어지고 있으니, 머리는 쉬지 않고 남은 틈을 붙잡고 있게 됩니다.

하루 끝에 못 한 일만 보인다면, 테트리스 화면을 뒤집어 보기
이 원리를 우리 하루에 옮기면 왜 퇴근길에 못 한 일만 떠오르는지 설명이 됩니다. 끝낸 일은 머릿속 화면에서 지워지고, 남은 일만 구멍처럼 남아 있으니까요. 그 결과 열 가지를 해낸 날도 '오늘 한 게 없다'는 기분으로 끝나기 쉬워요.
그래서 저는 테트리스 화면을 일부러 뒤집어 보는 방법을 권하고 싶어요(제 제안). 하루를 마칠 때 해야 할 일 목록 옆에 오늘 지운 줄 목록을 따로 적는 겁니다. 끝낸 일을 세 줄만 적어도 지워진 줄이 다시 눈에 보이고, 남은 구멍은 '내일 첫 조각을 놓을 자리'로 바뀌어요. 남은 일도 하나만 골라 메모해 두면, 머릿속에서 맴돌던 틈이 종이 위로 옮겨 갑니다.
퇴근 전 끝낸 일 3줄 + 내일 첫 조각 1줄. 사라진 성과를 다시 보이게 하고, 맴도는 구멍은 종이에 맡깁니다.

테트리스 규칙이 남긴 한 줄
테트리스 규칙은 성공을 지우고 틈만 보여 주기 때문에 40년 넘게 손을 떼기 어려운 게임이 됐어요. 그 화면이 내 하루에도 똑같이 켜져 있다는 걸 알면, 오늘 지운 줄을 한 번쯤 다시 꺼내 볼 이유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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