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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탐구 생활/대중 심리와 그림자

선택 과부하, 잼 24종 실험이 늘 재현되지는 않는 이유

by 글연못 2026.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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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영화 한 편 보려고 OTT 앱을 엽니다. 추천 목록을 넘기고, 예고편을 두어 개 틀었다가 끄고, 다른 앱으로 넘어가 또 넘깁니다. 30분쯤 지나면 결국 예전에 본 드라마를 다시 틀죠. 고를 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 고른 밤. 한 번쯤 겪어본 장면일 겁니다.

이럴 때 자주 인용되는 게 '선택 과부하'입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사람은 오히려 결정을 미루거나 포기한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거의 항상 같은 실험이 따라붙습니다. 마트 시식대의 잼 24종.

그런데 이 유명한 실험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후속편이 있습니다. 선택 과부하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늘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잼 24종과 6종, 원래 실험이 보여준 것

2000년 심리학자 쉬나 아이엔가와 마크 레퍼는 한 식료품점에 잼 시식대를 차렸습니다. 어떤 날은 6종, 어떤 날은 24종을 올려두었죠.

구분 잼 6종 잼 24종
지나가다 멈춘 사람 약 40% 약 60%
1인당 맛본 잼 약 1.5개 약 1.5개
나중에 실제로 산 비율 약 30% 약 3%

많이 차려놓은 쪽이 사람은 더 많이 끌었습니다. 그런데 사는 비율은 10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같은 연구진의 초콜릿 실험에서도 6개 중에 고른 사람이 30개 중에 고른 사람보다 선택한 초콜릿에 더 만족했고, 사례비 대신 초콜릿을 받아 간 비율도 48% 대 12%로 차이가 났습니다.

이 결과는 강렬했습니다. 선택지를 줄여야 팔린다는 메시지는 마케팅 강의와 경영서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10년 뒤, 실험을 모아 보니

2010년 벤저민 샤이베헨네, 라이너 그라이페네더, 피터 토드는 선택 과부하를 다룬 실험을 한데 모아 분석했습니다. 학술지 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실린 이 메타분석은 발표·미발표 실험 50개, 조건 63개, 참가자 5,036명을 포함했습니다.

결과는 한 줄로 요약됩니다. 평균 효과 크기가 사실상 0이었습니다(D = 0.02). 선택지가 많아서 결정을 못 한다는 효과가 평균적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연구진은 연구마다 결과가 크게 갈렸다는 점도 함께 보고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는 과부하가 분명히 나타났고, 어떤 실험에서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많이 샀습니다. 연구진은 과부하가 반드시 일어나는 충분조건을 찾지 못했지만, 개별 연구에서 제안된 조건들이 언제 과부하가 생기는지 설명할 여지는 있다고 적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잼 실험은 틀린 게 아니라, 늘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언제 많은 선택지가 발목을 잡을까

후속 연구에서 자주 거론되는 조건 가운데 하나는 이미 뚜렷한 취향이나 전문성이 있느냐입니다. 원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에게 선택지가 많다는 건 원하는 걸 찾을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기준이 없는 사람에게는 비교해야 할 대상이 늘어난다는 뜻이고요.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해석을 조금 더해 보겠습니다. 잼 실험을 다시 떠올려 보면, 24종 앞에 선 사람 대부분은 잼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는 평범한 쇼핑객이었을 겁니다. 반대로 잼을 매일 먹는 사람이라면 24종이 오히려 반가웠을지도 모릅니다. 선택지의 수보다, 고르는 사람 손에 비교 기준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의 OTT 장면으로 돌아가면 이해가 쉽습니다.

  • 오늘은 두 시간 안에 끝나는 가벼운 코미디를 보겠다는 사람: 목록이 길어도 몇 분이면 고릅니다.
  • 그냥 뭔가 재밌는 거라는 사람: 목록이 길수록 넘기기만 합니다.

두 사람 앞에 놓인 선택지 수는 같습니다. 달라진 건 머릿속의 기준입니다.

선택지를 줄이기 전에 기준을 먼저

그래서 선택 과부하를 피하는 방법도 '무조건 줄이기'보다 순서의 문제가 됩니다.

  • 목록을 보기 전에 조건 두 개를 먼저 적습니다. 예산 얼마 이하, 이번 주 안에 필요함처럼요.
  • 조건에 맞지 않는 것은 비교하지 않고 바로 뺍니다. 고르기보다 지우기가 빠릅니다.
  • 남은 게 세 개쯤이면 그때 비교합니다. 이 단계에서만 리뷰와 세부 사항을 봅니다.
  • 조건을 정했는데도 못 고르겠다면, 정말 선택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조건이 모호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품 수를 무작정 줄이는 것보다 고객이 자기 기준을 빨리 세우도록 돕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용도별로 묶은 진열, 처음이라면 이것부터라는 안내 같은 장치들이죠.

유명한 실험을 읽는 법

잼 실험이 이렇게 오래 인용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숫자가 선명하고, 이야기가 직관에 딱 맞았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의 인상적인 실험은 출발점일 뿐, 결론은 여러 실험이 모였을 때 나옵니다. 선택 과부하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다음에 목록 앞에서 한참 망설이게 되면, 선택지가 너무 많다고 탓하기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해 보세요. 지금 내 손에 비교 기준이 있는지. 그게 없으면 6개든 24개든 고르기는 똑같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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