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나흘짜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흘은 날씨도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 공항에서 비행기가 세 시간 늦어졌고, 짐은 맨 마지막에 나왔습니다. 일주일 뒤 누가 "여행 어땠어?" 하고 물으면 입에서 먼저 나오는 말은 "아, 돌아올 때 고생했지"입니다. 좋았던 사흘은 기억 뒤쪽으로 밀려나 있죠.
피크엔드 법칙 뜻은 이 장면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어떤 경험을 떠올릴 때 전체를 고르게 평균 내지 않고,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마지막 순간(엔드)을 중심으로 기억한다는 것이죠.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는 생각보다 적게 반영됩니다. 이 법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곳은 뜻밖에도 대장내시경 검사실이었습니다.
더 오래 걸린 검사가 덜 괴롭게 기억됐습니다
2003년 토론토의 의사 도널드 레델마이어와 심리학자 조엘 카츠, 대니얼 카너먼은 대장내시경을 받는 외래 환자 682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한쪽은 평소대로 검사를 마쳤고, 다른 쪽은 검사가 끝난 뒤 내시경 끝을 직장에 잠시 더 머물게 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두는 것이라 불편하긴 해도 아프지는 않은 시간이었어요. 검사 시간은 당연히 더 길어졌죠.

결과는 직관과 반대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의 통증은 시간을 늘린 쪽이 10점 만점에 1.7점, 평소대로 한 쪽이 2.5점이었습니다. 검사 전체가 얼마나 불쾌했는지를 물었을 때도 4.4 대 4.9로, 더 오래 검사받은 쪽이 약 10% 덜 불쾌했다고 답했어요. 여러 불쾌한 경험과 견줘 순위를 매기게 했을 때도 덜 나쁜 쪽에 놓았고요(Redelmeier, Katz, Kahneman, Pain 104권, 187~194쪽, 초록 기준).
불편한 시간의 총량은 늘었는데 기억은 나아졌습니다. 끝이 덜 아팠기 때문이죠.
더 눈에 띄는 건 그 뒤입니다. 연구진은 환자들이 나중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는지를 중앙값 5.3년 동안 추적했는데, 전체 재검 비율은 50.4%였고 시간을 늘린 쪽이 조금 더 많이 돌아왔습니다(오즈비 1.41). 기억이 달라지자 다음 선택도 달라진 겁니다.
찬물에 손을 담근 사람들도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이 실험에는 앞선 연구가 있습니다. 1993년 카너먼과 동료들은 참가자에게 찬물에 손을 담그게 했어요. 한 번은 14도의 물에 60초, 다른 한 번은 같은 14도에 60초를 담근 뒤 물 온도를 15도로 살짝 올려 30초를 더 버티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고통을 그대로 겪고 거기에 덜 차가운 30초가 더해진 것이죠.

그런데 둘 중 하나를 다시 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느냐고 묻자, 참가자들은 더 긴 쪽을 골랐습니다. 논문 제목이 내용을 그대로 말해 줘요. '더 큰 고통이 선호될 때: 더 나은 끝을 덧붙이기'(Kahneman 외, Psychological Science 4권 6호, 401~405쪽). 연구진은 사람들이 긴 쪽의 기억을 더 좋아했거나 덜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1996년에는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이 실제 대장내시경과 쇄석술 환자를 관찰해, 환자가 기억하는 고통이 가장 아팠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으로 잘 설명되고 시술이 얼마나 길었는지와는 관계가 약하다는 점을 보고했습니다(Pain 66권 1호, 3~8쪽). 2003년의 무작위 실험은 이 관찰을 실제 진료에서 확인한 것이고요.
카너먼은 이를 두고 겪는 나와 기억하는 나가 다르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검사대 위에서 1분 1분을 견디는 것은 겪는 나이지만, 다음에 또 받을지를 정하는 것은 기억하는 나입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나는 시간을 재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칙은 아닙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끝만 좋으면 다 좋다"로 정리하고 싶어지는데, 그렇게까지 넓히면 틀립니다.

피크엔드 법칙을 다룬 후속 연구들을 정리한 자료를 보면 한계가 꽤 구체적입니다. 2008년의 한 연구는 휴가처럼 긴 경험에서 피크와 끝이 기억된 만족도를 "뛰어나게 잘 예측하지는 못했다"고 보고했고,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더 잘 예측했습니다. 2009년 연구에서는 하루처럼 여러 장면이 이어지는 긴 경험이 이 법칙을 잘 따르지 않았고요(위키백과 'Peak–end rule' 항목의 정리 기준, 원 논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리하면 이 법칙이 강하게 작동하는 조건은 이렇습니다.
-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한 덩어리의 경험일 때 (검사, 진료, 놀이기구, 공연)
- 강도가 순간순간 달라지는 경험일 때
- 나중에 한 줄로 평가해야 할 때
반대로 여러 날에 걸친 여행, 몇 년의 직장 생활처럼 장면이 많고 목표가 섞인 경험은 끝 하나로 요약되지 않습니다. 첫머리의 여행 이야기도 정확히 말하면 법칙의 증명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이 유난히 잘 떠오르는 흔한 사례쯤으로 읽어야 맞습니다.
하나 더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대장내시경 실험은 환자가 다시 검사받으러 오게 하려는, 환자에게 이로운 목적이었습니다. 같은 원리를 불편을 감추는 데 쓰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끝에만 친절을 몰아 넣어 나쁜 경험을 좋게 기억하게 만드는 일은 기억하는 나를 달래면서 겪는 나를 속이는 셈이니까요.
평가하기 전에 끝 장면을 가려 보기
이 법칙을 알고 나면 두 가지를 다르게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무언가를 평가할 때입니다. 식당 후기를 쓰려는 순간, 사람을 평가하려는 순간, "그 프로젝트 별로였어"라고 말하려는 순간에 지금 떠오른 장면이 마지막 장면인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계산대에서의 1분이 두 시간의 식사를 덮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끝 장면을 손으로 가리고 나머지를 떠올려 보면 평가가 달라질 때가 있어요.
다른 하나는 내가 끝을 만들 수 있을 때입니다. 운동 마지막 5분을 가장 힘든 동작이 아니라 가벼운 정리 운동으로 두면 내일 다시 나올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워집니다. 아이와의 하루, 회의, 수업도 마찬가지예요. 내용은 그대로 두고 마지막 몇 분만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싸고, 다음번을 바꿉니다.
기억은 경험의 평균이 아니라 편집본입니다. 편집 기준을 알고 있으면 남이 만든 끝에 덜 흔들리고, 내가 만드는 끝에는 조금 더 마음을 쓰게 됩니다.
출처
- Redelmeier DA, Katz J, Kahneman D (2003). Memories of colonoscopy: a randomized trial. Pain 104(1–2), 187–194. 초록: https://yorkspace.library.yorku.ca/items/1237abd1-7e5a-4a48-bb27-c6e37bac1c34
- Kahneman D, Fredrickson BL, Schreiber CA, Redelmeier DA (1993). When More Pain Is Preferred to Less: Adding a Better End. Psychological Science 4(6), 401–405.
- Redelmeier DA, Kahneman D (1996). Patients' memories of painful medical treatments. Pain 66(1), 3–8.
- 후속 연구와 한계 정리: https://en.wikipedia.org/wiki/Peak%E2%80%93end_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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