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눈에 보기
- 1979년 12월 필립스와 소니는 CD의 재생시간을 60분으로 맞췄습니다. 이듬해 5월의 회의록에는 지름 120mm, 75분이 적혀 있습니다.
- 베토벤 교향곡 9번 이야기는 필립스의 옛 공식 연혁에도, 소니 누리집의 설명에도 올라 있었습니다.
- 1980년 6월 19일 소니는 EFM 방식에 동의했습니다.
- 74분이라는 숫자 뒤에서 실제로 오간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글 끝에서 정리합니다.
CD 한 장에 74분 남짓이 들어간다는 말,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CD 용량 74분 이유에는 늘 같은 이야기가 따라붙었습니다. 소니 경영진이던 오가 노리오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이 한 장에 통째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카세트 공테이프를 사서 좋아하는 음반을 녹음해 들으시던 분이라면, CD가 처음 나왔을 때 이 일화를 어디선가 접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 일화를 따라가 봅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이 이야기는 한 줄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같은 숫자를 두고 말하는 사람이 자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CD 용량 74분, 처음 계획은 60분이었습니다
CD는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일본의 소니가 손잡고 만든 규격입니다. 이 규격을 만드는 작업팀에 있던 필립스의 기술자 코스 이밍크가 2007년 12월 IEEE 정보이론학회 소식지에 쓴 글이 가장 자세한 기록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글에 따르면 1979년 12월 20일 회의에서 필립스는 지름 115mm를, 소니는 처음에 100mm를 내놓았습니다. 재생시간은 두 회사 모두 60분이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는 115mm가 카세트테이프의 대각선 길이였다고 덧붙이는데, 이 부분은 제가 따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재생시간은 두 가지로 정해집니다. 디스크의 지름, 그리고 정보를 얼마나 촘촘히 적느냐입니다. 공책으로 치면 공책의 크기와 글씨의 크기입니다. 같은 글씨 크기라면 큰 공책에 더 많이 적히고, 같은 공책이라도 글씨를 작게 쓰면 더 많이 적힙니다.
| 시점 | 지름 | 재생시간 | 근거 |
|---|---|---|---|
| 1979년 12월 20일 회의 | 필립스 115mm, 소니 100mm | 60분 | 이밍크 2007 |
| 1980년 5월 에인트호번 회의록 | 120mm | 75분 | 이밍크 2007. 회의록에 바꾼 이유는 적혀 있지 않음 |
| 1980년 6월 19일 | 소니가 EFM 방식에 동의 | 같은 크기에 약 30% 더 촘촘히 | 이밍크 2007 |
EFM은 같은 자리에 정보를 더 촘촘히 적어도 읽을 수 있도록 신호를 바꿔 적는 방식입니다. 글씨를 작게 써도 알아볼 수 있게 쓰는 규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120mm로 바뀐 시점을 영어 위키백과는 1979년 12월로 적고, 이밍크의 2007년 글은 1980년 5월 회의록에서 처음 보인다고 씁니다. 자료마다 다르다는 뜻이고, 저는 어느 쪽이 맞는지 가려내지 못했습니다.

CD 용량 74분 이유로 가장 널리 퍼진 베토벤 9번 이야기
가장 유명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소니의 오가 노리오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이 한 장에 다 들어가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74분이 됐다는 것입니다. 속설을 따져 보는 사이트 스노프스가 인용한 1982년 9월 26일 빌보드 기사에는 오가가 74분이면 오페라 한 편이나 베토벤 9번 전곡을 담을 수 있다고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 일화의 가장 이른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이야기에는 변형이 여럿 붙어 있습니다.
- 필립스 쪽 설명입니다. 기즈모도가 인용한 필립스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9번 연주는 1951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실황으로 약 74분이었다고 합니다.
- 지휘자 카라얀이 그 길이를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즈모도는 이를 이름 없는 '어떤 사람들'의 말로 소개합니다.
- 오가의 부인이 그 곡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밍크는 소니 누리집이 그렇게 설명한다고 씁니다. 스노프스는 이 취향의 주인이 오가가 아니라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의 부인이라는 설도 소개합니다.
- 이밍크가 전하는 필립스 누리집의 옛 공식 연혁에는 "재생시간은 베토벤이 사후에 정했다"는 문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스노프스는 반대쪽 사실도 적습니다. 카라얀의 녹음을 포함해 요즘 9번 연주는 대부분 74분보다 몇 분 짧습니다. 74분이 9번 한 곡에 꼭 맞춘 숫자라면 조금 어색한 대목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이야기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들어가야 한다'는 요구와 '딱 맞는다'는 결과는 다른 문제이니까요.
지름 5mm를 두고 벌어진 일, 이밍크의 설명
이 이야기에 가장 분명하게 반박한 사람은 규격 개발에 직접 참여한 이밍크입니다. 기즈모도에 실린 그의 답장에서 그는 베토벤 이야기를 "좋은 홍보 이야기"라고 불렀습니다. 2007년 글에서 그가 든 실제 이유는 공장입니다.
- 필립스 계열사 폴리그램이 독일 하노버에 115mm 디스크를 만들 수 있는 CD 공장을 세워 두었습니다. 소니에는 그런 시설이 없었습니다.
- 그래서 115mm로 정해지면 필립스가 경쟁에서 앞서게 됩니다. 소니가 이에 맞섰다는 것이 이밍크의 설명입니다.
- 그는 120mm를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해진 크기라고 부릅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정보 밀도입니다. 이밍크는 EFM 덕분에 115mm는 물론 100mm 디스크에도 74분 33초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씁니다. 그런데 120mm로 키운 뒤에는 정보의 밀도를 30% 낮췄습니다. 나선으로 도는 트랙의 간격이 1.45마이크로미터에서 1.6으로, 정보 한 칸의 길이가 0.5에서 0.6으로 넓어졌고, 이유는 공장에서 만들 때의 여유를 늘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글씨를 줄일 수 있는데도 공책을 키우고 글씨는 도로 키운 셈입니다. 74분이라는 숫자는 그대로 남았고요.

CD 용량 74분 이유, 어디까지 확인되고 무엇이 비어 있나
| 주장 | 말한 사람 | 확인된 것 | 비어 있는 것 |
|---|---|---|---|
| 오가가 베토벤 9번 전곡이 들어가길 원했다 | 오가(1982년 빌보드), 소니 누리집(이밍크가 인용) | 오가가 1982년에 그렇게 말한 기사가 있음 | 1979~80년 회의에서 그것이 결정 근거였다는 당시 문서 |
| 가장 긴 9번 연주가 74분이었다 | 필립스(기즈모도가 인용) | 필립스가 그렇게 설명했다는 것 | 그 연주 길이를 규격 회의에서 근거로 들었다는 당시 문서 |
| 카라얀이 요구했다 | 이름 없는 '어떤 사람들' | 카라얀이 CD 홍보에 나선 사실(스노프스: 1981년 빈 기자회견) | 요구했다는 근거 |
| 공장 사정과 회사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 이밍크(필립스 쪽 개발 책임자) | 회의록에 120mm와 75분만 있고 이유는 없음 | 소니 쪽 당사자의 같은 시기 증언. 이번에 찾지 못했습니다 |
표에서 보듯 어느 쪽도 1979~80년 회의 현장의 문서로 못 박혀 있지는 않습니다. 이밍크의 설명은 가장 구체적이지만 같은 사건의 한쪽 당사자가 쓴 글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베토벤 때문이 아니다"라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베토벤 이야기가 퍼진 것은 사실이고, 규격을 만든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그 이야기를 반박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선택이 남긴 것, 얻은 것과 치른 값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CD는 1982년 일본에서 먼저 나왔고 세계 시장에는 1983년 3월에 나갔습니다(이밍크). 오가도 한 곡을 끊지 않고 담는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음반을 뒤집어 들어야 했던 시절을 겪은 분이라면 그 편리함을 아실 겁니다.
치른 값은 이밍크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같은 120mm에서도 더 긴 재생시간이 가능했지만, 그 길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술이 허락한 한계보다 공장이 편한 쪽이 앞섰다는 풀이인데, 이 부분 역시 한 사람의 증언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숫자에 붙은 이야기를 읽는 법
CD 이야기에서 가져갈 것은 CD의 비밀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이유가 붙은 숫자를 만났을 때 확인해 볼 순서입니다. 제 해석으로 세 가지만 적습니다.
- 그 이유가 처음 나온 때를 봅니다. 오가의 말이 실린 기사는 1982년이고, 규격 회의는 1979~80년입니다. 결정 뒤에 붙은 설명일 수 있습니다.
- 말하는 사람이 누구 편이었는지 봅니다. 필립스도, 소니도, 규격을 만든 기술자도 모두 당사자입니다.
- 같은 시기의 문서가 있는지 봅니다. 회의록에는 숫자만 있고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도는 '숫자에 얽힌 사연'을 만나도 같은 순서면 됩니다. 사연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확인된 부분인지 가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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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 A. Schouhamer Immink, "Shannon, Beethoven, and the Compact Disc", IEEE Information Theory Society Newsletter, 2007년 12월: 1979년 12월 20일 회의의 115mm·100mm·60분, 1980년 5월 회의록의 120mm·75분, 1980년 6월 19일 EFM 동의, 하노버 공장, 정보 밀도 30% 감소, 필립스·소니 누리집의 설명, 1982~83년 발매 일정
- Snopes, "Roll Over, Beethoven"(2007년 5월 갱신): 1982년 9월 26일 빌보드 기사 속 오가의 발언, 변형된 설명들, 요즘 9번 연주의 길이
- 기즈모도, "Why the CD Is 74 Minutes Long"(2011년 1월): 필립스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 설명, 카라얀 이야기, 이밍크의 답장
- 위키백과 영어판, Compact disc: 120mm 채택 시점에 대한 서술, 115mm가 카세트 대각선이라는 서술(제가 따로 확인하지 못함)
- 위키백과 영어판, Kees Schouhamer Immink: 이밍크가 베토벤 이야기를 속설로 반박했다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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